지난 2015년 12월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딸 맥스의 탄생 소식을 알렸다. 그러면서 그는 딸에게 공개편지를 썼다. 저커버그는 “네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란다”며 당시 시가로 450억 달러(52조 원)에 달하는 페이스북 지분 99%를 상속하지 않고 생전에 모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자수성가한 CEO가 자신의 사업적 능력과 딸에 대한 사랑을 교육, 혁신, 기회의 평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와 촘촘히 연결하자 세상은 3시간 만에 ‘좋아요’를 52만 개나 누르며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모든 이가 저커버그의 선언을 ‘아름다운 상속’이라며 긍정한 건 아니다. 대니얼 마코비츠 예일대 교수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봤다. 그는 “구시대 엘리트 입장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저커버그의 딸은 특권의 필수 요소를 하나도 빼앗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저커버그의 나머지 재산과 사회적 지위만으로도 그의 딸은 엘리트 대열에 합류하는 데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충분히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오히려 딸의 특권이 강화됐다고도 말했다. 상속 재산에 따라 붙는 ‘나태하다’는 이미지가 미리 제거되면서 성실함과 야망, 품격을 갖춘 우아한 엘리트가 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마코비츠 교수는 잘 나가는 실리콘밸리의 젊은 CEO가 그저 못마땅했던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는 저서 ‘엘리트 세습(the meritocracy trap)’을 통해 엘리트 지위 대물림은 저커버그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를 공멸로 치닫게 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한다.
저자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엘리트다. 학문적으로 자수성가해 미국 엘리트 교육의 산실에서 차세대 엘리트를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캠퍼스 풍경은 점점 우려스럽게 변하고 있다. 자수성가한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 덕에 양질의 교육 환경에서 자라난 엘리트 2세, 3세들이 고급 엘리트 교육 기회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도 능력껏 성실하게 노력하고, 공정하게 경쟁한다. 다만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다. 각자 ‘부모 찬스’를 이용하며 자신들만의 공정을 기준으로 경쟁한다. 엘리트 교육기관에서 추가 ‘능력’을 장착한 이들은 졸업 후 변호사, 금융인, IT 엔지니어 등 고소득 직업을 가지게 된다.
새로운 귀족이 된 이들이 엘리트 지위를 세습하는 동안 한때 성실하게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었던 중산층은 점점 기회를 잃고 뒤로 밀려나고 있다. 높은 학력과 기술 또는 경영 기법을 장착한 소수 엘리트가 수천 명의 노동력을 대신하면서 중산층의 취업 기회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사회적으로 강요 된 실직과 능력 부족은 결국 이들을 분노와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4년 전 도널드 트럼프라는 기업인이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런 중산층의 박탈감을 대변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해 민주당 인사들은 몰락의 길로 들어선 중산층들이 반감을 갖는 성공한 엘리트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능력주의’ 사회의 수혜자인 엘리트들 역시 실은 불행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게으른’ 중산층과 자신들을 차별화하기 위해 ‘근면’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며 끊임없이 자기 억압, 자기 착취를 한다. 일 중독자로 불리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주민의 절반이 석박사 학위를 가진 팰로앨토 지역 고등학교는 졸업생 가운데 60% 이상이 엘리트 대학에 입학하지만 학생 자살률은 전국 평균의 4~5배에 달한다.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앓는 학생의 비율 역시 전국 평균의 2~3배다.
마코비츠 교수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서로 적대하는 ‘능력주의’의 함정에서 서둘러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엘리트라는 계층 자체를 없애자는 건 아니다. 엘리트 계층의 소수 독점과 폐쇄성을 없애자는 것인데 이를 위해 교육과 노동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먼저 엘리트 대학의 세금 혜택을 없애고 이들 대학의 입학 정원을 늘리자고 제안한다. 사회적 이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또 중산층을 위한 일자리 확대를 위해 중산층 노동자에게 유리한 상품과 서비스 생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세우자고 제안한다. 그는 “현재 경제 정책은 이런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면서 “중산층 노동력을 전면과 중심부에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이 단순히 엘리트와 중산층으로 양분돼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민이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가 무엇이고 그에 따라 어떤 정치적 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타당한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마코비츠 교수는 말한다. 2만2,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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