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비롯한 보호 장구도 없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받는 의료진과 밀려드는 환자들로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병원, 하루하루 냉동 트레일러에 쌓여가는 시신들. 모두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코로나19가 드러낸 것은 부실한 미국 의료 시스템만이 아니다. 심각한 기저질환을 앓고 있던 미국 경제의 민낯도 여실히 들춰냈다. 대량 실직으로 인해 빈곤층으로 전락한 시민들이 실업수당을 타기 위해 몰려들고, 무료 급식 줄에 늘어선 모습은 주식시장과 부동산 붐 뒤에 가려진 미국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다.
‘아메리칸 엔드 게임’은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미국의 충격적인 실상을 파헤친 책이다. 코로나19라는 강력한 태풍은 미국이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아니라 ‘아메리칸 나이트메어(미국의 악몽)’의 나라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책은 지적한다. 저자는 미국의 자본주의를 고삐 풀린 망아지에 비유하며, 극소수의 부자들은 더 살찌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갈수록 야위게 하는 ‘편애의 자유주의’라고 표현한다. 그런 미국에서 위정자들이 권력을 대물림한 결과 파국 직전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의 문제는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가령 미국 동부의 소도시 델라웨어주 월밍턴은 오바마 전 행정부 이후 세계적인 조세회피처로 급성장했다. 이 지역 내 2층짜리 건물 한 채에 아메리칸항공, 애플, 버크셔 해서웨이, 코카콜라 등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세계적인 기업 30만 곳이 주소를 공유하고 있다. 그 주소에는 2016년 대선에서 치열하게 경합했던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함께 등록돼 있다. 조 바이든도 같은 바로 옆 건물에 페이퍼 컴퍼니를 등록한 이웃이다. 이들이 대선 후보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면서도 서로의 치부를 밑바닥까지 들춰내려 하지 않았던 이유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파나마 같은 조세회피처에 대해 맹공을 펼치면서도 부통령이던 바이든과 함께 델라웨어를 합법적인 조세회피 천국으로 만들어 전 세계 검은돈이 흘러 들어오는데 일조했다고 책은 전한다.
문제는 미국 정치권이 이런 극소수 부자, 엘리트들과 야합해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게 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미국을 전 세계 국가의 선망의 대상에서 몰락해가는 자본주의 제국으로 규정하며 줄곧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엔드 게임’(최종 단계)에 접어든 미국은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지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자국 이익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있다. 1만8,000원.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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