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중 인물보다 늘 김혜수가 먼저 보인다’는 말이 얼마나 무게감 있는 숙제였는지 몰라요.”
김혜수는 배우로서 오랜 경력을 가졌지만, 단순한 배우로 인식되지 않는다. 1986년 데뷔한 이래로 지금까지 독보적인 존재감을 선보여왔다. 그의 목소리, 연기, 자태만 봐도 누구나 ‘김혜수’임을 안다. 김혜수를 모르는 대중이 극히 드물 정도로 대체 불가한 충무로의 아이콘인 셈이다.
그런 그에게도 콤플렉스가 있었으니, 캐릭터보다 먼저 ‘김혜수’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운명처럼 만난 영화 ‘내가 죽던 날’에서는 이런 콤플렉스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는 “제가 가진 것들이 드러나면 무의식 중에 배제하는 게 있다. 그러나 ‘내가 죽던 날’을 통해서는 그런 것들로부터 좀 더 자유로웠다”고 털어놨다.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김혜수는 섬의 절벽 끝에서 사라진 소녀 세진(노정의)의 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경찰 현수를 연기했다.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닮은 소진에게 점점 몰입하던 현수는 사건 이면에 감춰진 진실에 다가갈수록 점차 자신의 내면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 인물이다.
“이번 작품은 모든 사건과 인물들이 고통과 절망에서 시작해요. 그 캐릭터를 마주해야 하는 스스로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고민이었죠.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것보다 진짜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와 닿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이걸 구현하려면 내가 나의 어두운 면, 나의 상처나 고통을 감추고 시작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어요. 그래서 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심도 있게 그려냈어요.”
극중 현수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매번 악몽을 꾼다. 이 설정은 김혜수가 실제 겪었던 일련의 경험들을 영화에 담아냈다. 김혜수는 이 장면에서 대사를 직접 쓰기도 했다. 악몽을 꾸던 당시 상황을 “심리적으로 죽은 상태였다”고 떠올렸다.
“제가 영화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없지만, 구체적인 작업을 위해 아이디어를 몇 가지 제안했어요. 처절한 바닥에 있는 현수의 감정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죠. 극 중 대사에서 ‘잠을 못 자’ ‘그런데 약을 먹고 여기가 어딘가 하면서 깬다’ ‘반복적으로 꾸는 악몽이 있다’는 이런 대사는 제가 직접 쓴 거예요. 실제 제가 늘 같은 꿈을 꾼 시기가 있었어요. 심리적으로 죽은 상태인가보다 싶었죠. 꿈을 꿀 때마다 제가 보이는데 (내가) 죽은 지 오래된 것 같더라거요. 그게 무섭지는 않고, 내가 엎드려 있는데 ‘누가 좀 치워주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 생각을 매번 하면서 자다 깨다 했던 거죠.”
김혜수는 현수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다 모친의 ‘빚투’와 관련해 겪었던 마음 고생을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해 7월 13억원 대에 이르는 모친의 빚투에 어머니와 8년 전 인연을 끊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언론에서 개인사가 알려진 건 작년이지만 그걸 처음 알게 된 건 2012년쯤이었는데, 일을 할 정신이 아니었어요. 극중 현수가 ‘나는 내 인생이 멀쩡한 줄 알다가 이럴 줄 몰랐다. 나는 진짜 몰랐다’고 말하는데, 그 말이 정말 내가 했던 이야기에요. 당시 심적으로 일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모든 문제가 내가 배우 일을 했기 때문에 시작됐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내가 괜히 연예인이 돼서 가정파탄이 됐나 그런 말도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일을 안 할 것이고,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정리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죠. 그때 제 파트너가 ‘선배 3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저를 믿고 가시면 안될까요’라고 했어요. 배우를 하는 나로서는 ‘내가 해온 시간을 이렇게 더럽히면서 마감하지 않으리라’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했던 드라마가 ‘직장의 신’, 영화 ‘관상’이었어요. 현수처럼 일을 하는 동안에는 잊을 수가 있더라고요. 초집중해야 하니까. 일이 저의 돌파구가 돼줬어요.”
‘내가 죽던 날’은 투자받기 힘든 과정들이 있었다. 등장인물 중 여성이 많고,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과정이 어둡고 다소 지난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혜수는 영화를 놓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영화가 제작되기까지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늘 작품을 하게 될 때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내 마음이 가냐 안가냐가 중요해요. 이 영화에는 마음이 많이 갔어요. 책으로 봤을 때는 좋은 이야기였어요. 그러나 투자가 어려운 글이었죠. 투자자 입장에서는 용기가 필요한 작품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영화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나 생각했어요. ‘잘 해야 된다’가 아닌 ‘제대로 해야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어요. 영화에 모두 진심을 갖고 모였고, 우리끼리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게 있었죠.”
배우로서 늘 완벽해 보이는 김혜수지만, 한때는 ‘여기까지만 하고 조용히 은퇴하자’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아역으로 데뷔한 김혜수는 어렸을 때부터 “왜 나는 늘 20% 부족할까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릴 때 데뷔를 하다 보니 어른들을 향한 동경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른들을 흉내 냈죠. 근데 대중은 뭐가 진짜, 가짜인지를 알잖아요. 전문가들이 그런 부분을 늘 지적했고, ‘난 열심히 하는데 왜 못한다고 하지?’ 싶기도 했어요. 배우로서 활용할 수 있는 소스가 단순하고, 배우를 하기 위해 갖춰져 있는 게 없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미숙했어요. 배우가 배역으로 진입하고 영화로서 배우로서 나를 드러내는 게 가장 큰 숙제였죠. 해내고 싶었어요. 영화 속의 인물이 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 지금도 느끼고 있어요.”
데뷔 34년 차임에도 김혜수에게 현장은 여전히 ‘두려운 공간’이다. 배우를 두고는 ‘피폐해지는 직업’이라 표현하며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부담감이 든다”고도 했다.
“아직도 현장이 즐겁거나 행복하진 않아요. 배우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어요. 남들이 모르는, 저만 아는 핸디캡들이 많거든요. 배우의 자산이라는 게 결국은 몸뚱아리, 표정. 감정적인 자산이 다예요. 이런 것들을 끄집어내고 변주를 해가면서 빚어내는 자체가 정말 경이로운 일인데, 인간 김혜수는 피폐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요. 나 자신은 괜찮게 생각하는데, 연기를 할 때의 내 자신은 싫어요. 현장에서 무언가 해내야 되는 동시에 한계를 직면하는 순간 현장은 괴롭죠. 한 작품 끝나고 나면 ‘여기까지 하고 조용히 은퇴하자’, ‘가진 것에 비하면 충분히 했다’ 이런 생각을 해요.(웃음)”
영화 ‘국가부도의 날’, ‘타짜’, ‘도둑들’, ‘차이나타운’, ‘굿바이 싱글’, 드라마 ‘하이에나’, ‘시그널’, ‘직장의 신’ 등 대표작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온 마음을 다해 연기했고, 함께 출연한 이정은, 김선영과 동료 이상의 우정을 쌓을 수 있었던 ‘내가 죽던 날’이 김혜수의 필모그래피 중 대표작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사실 대표작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대표작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 작품은 하나도 없어요. ‘타짜’를 많이들 이야기하시지만 보신 분들이 하는 이야기잖아요. ‘타짜’ 속 캐릭터는 최동훈 감독의 김혜수에요. 이번에는 박지완 감독의 김혜수라고 생각은 하지 않아요. 이 작품 역시 대표작은 아니에요. 대표작은 있어도 없어도 상관 없어요. 배우로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가 중요하죠. 오래 연기한다고 해서 대표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도 안 하고요. 대표작이 있다고 해서 영화인으로서의 프라이드가 생기지도 않더라고요.”
/이혜리기자 hye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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