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백악관행(行)’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번 선거는 개표 초반 ‘샤이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지만 ‘안티 트럼프’의 위력이 시간이 흐를 수록 거세지는 양상을 보였다. 그 어느 때보다 판세를 읽기가 어려웠던 만큼 경우의 수별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하는 청와대도 덩달아 긴장감 속에서 동분서주했다. 개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4일부터 바이든 후보로 승부가 기운 6일까지 ‘청와대의 시간’을 재구성했다.
지난 4일 오전 11시. 미국 대선 개표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는 가운데 이를 주목해야 할 청와대 안보실 핵심 멤버들은 청와대 밖에 있었다.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에 대한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이날 열리면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주석 안보실 제1차장, 김현종 제2차장 등이 여의도로 총출동한 것이다. 특히 서 실장은 이날 필수 출석 대상자나 다름없었다. 야당이 자가격리 중이던 서 실장의 불참을 문제시해 국정감사가 한 차례 연기된 후 개최됐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공화당의 텃밭’으로 알려진 텍사스주에서는 개표율 64% 기준으로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을 1.4% 포인트 차이로 앞서고 있었다. 약 20분 후 텍사스주 개표가 66% 완료됐을 때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후보를 1,000여 표 차로 앞지르며 역전극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예상 밖 선전 속에서 서 실장은 오후에도 국회를 지켰다. 서 실장은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국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되는지에 따라 대응 방안을 미리 준비해 놨나’라고 묻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해 놨다”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후 5시께 서 실장은 청와대로 급히 복귀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미국 대선 상황에 맞춰 실시간 대응이 필요해지면서 청와대를 오래 비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날(4일)까지 미국 대선과 관련해 극도로 신중한 반응을 보인 청와대는 5일 오전 11시 반 첫 공식 입장을 냈다.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한미 협력을 이어간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물론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협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새로이 들어설 정부와 한반도의 비핵화 및 평화 체제 달성을 위해서도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무렵 미국에서는 6개 핵심 경합주에 속한 펜실베니아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는 반면, 위스콘신주와 미시간주에서는 바이든 후보가 전세를 역전하며 바이든 후보 측으로 승부가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었다.
오후 3시에는 서훈 실장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미국 대선 상황을 논의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김상조 정책실장,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이 참석했다.
회의는 한 시간 가량 진행됐다. 특히 정부는 한국 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기 위해 미국 대선 결과가 거시 경제와 통상, 산업 등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점검했다.
회의 결과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됐다. 이날 안보관계장관회의는 장장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지난 6일 오전에는 한·미·일 안보사령탑이 화상 회의를 열고 ‘한반도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트럼프 캠프가 일부 주에서의 개표 과정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하며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었다.
화상 논의가 진행될 무렵,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불복 의사를 밝혔다. 그는 “합법적 투표만 계산하면 내가 쉽게 이긴다”고 주장하면서 “선거 과정이 대법원에서 끝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바이든 시대’가 유력한 상황 속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반발하며 안보 공백이 우려되자 한·미·일 안보사령탑은 외교·안보 분야의 협력체제를 집중 점검했다.
특히 우리 정부는 미국 대선이 종료된 만큼 멈춰선 대북 대화 시계를 하루빨리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국내 이슈를 정리한 이후에야 대북 정책을 추진할 공산이 큰 만큼 시급성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제15회 제주포럼 영상 메시지에서 “한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향한 의지를 강조했다.
/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