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사건은 피해자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긴다. 굳이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을 때다. 피해자는 자신에게 악몽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최악의 경우는 가까운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해 그 사람을 피해 살기가 사실상 불가능 할 때다. 가족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우가 바로 그렇다.
A양은 군인으로 복무하던 오빠 B씨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 가해자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경찰에 신고할 수 있지만 오빠라는 점에서 A씨의 고민은 매우 컸을 것이다. 결국 A씨는 부모에게 관련 사실을 알렸다. A씨의 복잡한 고민을 다 알 수 없지만 B씨가 자신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A씨의 기대는 처참하게 부서졌다. B씨는 부모에게 동생 성추행과 관련해 꾸중을 들은 다음 A씨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다. 그는 흉기를 A씨의 목에 들이대며 “더 이상 부모님께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며 협박을 했다. 이 행위로 A씨는 목에 약 7㎝ 길이의 핏방울이 맺히는 상처를 입었다. 친오빠에게 성추행에 더해 살인 협박까지 당한 A씨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훨씬 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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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A씨의 고통을 생각했을 때 B씨에게 중형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봤다. 1심을 맡은 보통군사법원은 B씨에게 내려진 성폭력, 특수상해, 상습폭행 등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A씨의 특수상해 혐의와 관련해서는 무죄로 판단해 징역 10년으로 감형했다. A씨가 입은 목의 상처가 경미해 특수상해로 인정하기는 힘들다는 것이었다. 2심 재판부는 “폭행이 없어도 일상생활 중 통상 발생할 수 있는 상처의 정도를 넘어섰다고는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흉기를 이용한 B씨의 협박 행위가 특수상해에 해당한다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피해자는 목 상처 때문에 병원에 가지는 않았으나 일주일 정도 목 부위에 통증을 느꼈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 등 자가치료를 했으며 약 2주일 정도가 지난 이후에야 상처가 모두 나았다”며 “동생이 입은 상처가 일상 생활 중 발생할 수 있는 상처와 같은 정도라고 보기 어렵고 신체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상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판결로 B씨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감옥에서 참회해야 하게 됐다. 하지만 B씨가 남긴 상처는 B씨가 감옥에서 보낼 시간보다 더 오랜 기간 동생인 A씨에게 고통을 줄 가능성이 크다. 아들의 성폭행으로 무너진 가족을 지켜야 하는 부모의 고통이 더 큰 것은 물론이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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