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킹크랩 시연 참관, 의심 없이 증명"
“킹크랩 브리핑·시연 관련 객관적 증거 모두가 예외 없이 2016년 11월9일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2016년 11월9일이 아니라, 김 지사가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한 시간대로 좁혀지고 있었습니다.” (서울고법 형사2부 재판장 함상훈 부장판사)
‘드루킹 댓글 조작’에 공모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김경수 경남지사가 6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김 지사는 지난해 1월 1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김 지사의 혐의는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와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중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는 ‘일부 유죄’로 판단했고,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전부 무죄’로 봤다. 따라서 징역 2년이라는 형량은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부분에서만 비롯된 것이다.
일부 유죄 판단을 받은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혐의는 김 지사가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사무실에서 ‘드루킹’ 김동원씨로부터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에 대한 설명을 듣고, 킹크랩 개발과 운용에 동의했다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2016년 11월9일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해 킹크랩 프로토타입 시연을 참관한 사실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판시했다.
모든 증거가 가리킨 곳, '2016년 11월9일'
이번 재판부 판단의 핵심 근거는 이 2016년 11월9일의 기록이었다. 이날은 김 지사가 경공모 사무실을 두 번째로 방문한 날로, 재판부는 이날과 연관된 증거를 종합해 김 지사의 유죄를 도출해냈다. 특검이 ‘시연 로그’라고 주장한 로그 기록, 킹크랩 개발 과정, 김씨와 킹크랩 개발자 우모씨의 진술 등이 그 증거였다.
앞서 김씨는 구속 중 작성한 ‘옥중노트’를 통해 김 지사가 두 번째로 사무실에 방문한 날 상황을 설명했다. 옥중노트에는 △강의장에서 드루킹이 킹크랩 관련 김 지사에게 브리핑 △우씨에게 킹크랩 프로토타입(모바일 휴대폰)을 가져와서 구동해 김 지사에게 보여주라고 지시 등 내용이 담겼다.
재판부는 김씨가 ‘강의장에서’ ‘프로토타입’ ‘모바일폰’ ‘구동’ 등 단어를 적시한 것이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만일 김씨가 무고한 김 지사를 공범으로 끌어들일 의도로 허위 사실을 조작하려 했다면, 구두로 킹크랩 개발 허락을 받았으며 목격자들도 있었다고 하는 편이 훨씬 용이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가 당시 상황을 두루뭉술하게 묘사하거나 확인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지 않고 구체적인 말로 풀어냈다는 점이 ‘시연이 실제로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이끌어낸 셈이다. 이후 드러난 디지털 증거 등은 당일 시연이 있었다는 재판부 추론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힘 못쓴 '닭갈비 사장' 증언…역작업은 무죄
김 지사 측은 시연이 있었다는 시간대에 닭갈비를 시켜 먹었다고 주장해왔다. 닭갈빗집 사장 A씨는 지난 6월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영수증에 있는 테이블 번호 25번은 가상의 테이블”이라며 “손님이 계산을 안 하고 갔거나 포장할 때 쓰는 번호”라고 증언했다. 닭갈비를 먹느라 시연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김 지사 측 주장에 힘을 실어준 증언이었지만, 이번 판결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가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혐의 부분에서 무죄로 판단한 부분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에 불리한 방향으로 댓글 조작이 이뤄진 이른바 ‘역작업’ 부분이다. 역작업이 이뤄진 규모는 댓글 수를 기준으로 전체의 4분의 1 정도로, 재판부는 이 부분이 김씨와 김 지사의 공모 범위를 벗어난 행동이라고 봤다.
또 김 지사 사건의 범행 내역에는 삭제된 댓글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댓글에 대한 공감·비공감 클릭도 다수 있었는데, 이 부분도 무죄로 판단됐다.
선거법 위반 무죄…어떤 선거? 어떤 후보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관해서는 항소심에서 전부 무죄가 선고됐다. 이를 유죄로 판단해 공직선거법 위반의 점에 한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 재판부와 다른 판단이다.
재판부는 공직선거법 제230조에 명시된 ‘선거운동과 관련하여’라는 구절에 집중했다. 선거운동과 관련해 금품 등 이익 제공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운동과 관련하여’의 요건을 갖추려면 특정 선거와 특정 후보자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 또, 그와의 관련성도 인정돼야 한다. 아울러 특정 후보자의 존재를 상정할 수 없다면, 공소사실이 선거운동과 관련돼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김씨를 통해 도두형 변호사 센다이 총영사직 추천 의사를 알릴 당시, 2018년 6월 제7회 지방선거에 출마할 의사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봤다. ‘특정 후보자’가 김 지사 자신이나 측근이라는 증거, ‘특정 선거’가 제7회 지방선거라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도 변호사는 김씨와 가깝게 지낸 경공모 회원이었다. 당초 김 지사는 도 변호사를 오사카 총영사직에 추천했다가, 임명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도 변호사를 일본 총영사직에 앉게 해달라는 김씨의 부탁에 따른 것이었다.
재판부는 김씨와 경공모 회원들이 2017년 대선 기간 문재인 당시 후보의 선거운동을 지원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도 변호사를 오사카 총영사직에 추천했다고 봤다. 추천 시기는 대선이 끝난 지 한 달 정도 지났으며, 지방선거는 1년가량 남겨둔 시점이었다. 이에 재판부는 당시 추천이 제7회 지방선거와 연관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사회 전체 여론까지 왜곡"…법정구속은 피했다
재판부는 유죄로 판단한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혐의에 관해 김 지사를 질타했다. 재판부는 “의도적으로 특정 여론을 조성해 온라인상의 건전한 여론 형성을 방해하고, 결국 사회 전체의 여론까지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선거 국면에서 여론을 유도할 목적 하에 댓글 조작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 위법성의 정도가 더 무겁다”고 덧붙였다. 이미 징역형의 판결이 확정된 김씨와 다른 경공모 회원들과의 처벌 형평성도 고려했다고 했다.
김 지사는 1심 선고 당시에는 법정구속됐지만, 이번에는 법정구속은 피했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현재 공직에 있고 지금까지 공판에 성실히 참여했다”며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또 재판부는 “항소심에 이르러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전부 무죄’를 선고하는 마당에 보석 취소까지 할 것은 아니라고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김 지사는 법정구속 이후 지난해 4월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재판을 받아왔다.
항소심 선고 직후 김 지사와 특검이 모두 상고 의사를 밝히면서, 2018년 특검의 기소로 시작된 김 지사 사건은 최종적으로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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