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승리를 선언하면서 향후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기술이 고도화된 만큼 바이든 행정부가 과거 오바마 정부 때처럼 북한 문제에 대한 관여를 최소화하는 ‘전략적 인내’를 택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북한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문에 따라 당장 도발에 나서기보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구체적인 입장이 나올 때까지 탐색기를 거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에서 대북 정책이 후 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큰 만큼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한미 군사훈련을 계기로 북한이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내년 3월이 북미 관계의 중대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8일 외교가에 따르면 미북 양국은 외교라인이 구축되기 전까지는 탐색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앞으로 반년 간은 행정부 내각 구성에 집중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북한의 도발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미 양국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핵미사일 모라토리움에 합의했기 때문에 바이든 당선인 측에서 6·12 합의를 먼저 깨지 않는 한 핵과 미사일과 관련된 고강도 전략 도발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로 두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관측에 힘을 더한다. 바이든 당선인은 선거 과정 내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에 방점을 찍은 만큼 당분간 방역 문제에 힘을 쏟을 가능성이 높다. 대외적으로는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4개국 비공식 안보협의체)를 통한 대중국 압박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당선인도 유세 기간 중 “북한이 핵 능력을 축소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것”이라면서 먼저 북한에 손을 내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바이든 당선인이 북한 문제 개입을 최소화하는 ‘전략적 인내’를 다시 택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마주하게 된 북한 상황에 대해 “전략적 인내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당시에는 북한의 핵 기술이 미국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올 수준이 아니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 위협 수준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지난달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드러내는 등 나날이 강화된 전략무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북미 관계를 조율할 우리 정부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진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상당기간 동안 북한과 미국 간 대화채널이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북한도 표면적인 비난과 달리 우리 정부의 역할을 기대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정부의 중재자 역할이 다시 부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내년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와 강도에 따라 북미 관계가 다시 악화일로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6월 판문점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담판을 통해 ‘한미연합훈련을 잠정 중단’한다고 약속했지만 바이든 당선인은 동맹관계를 강조하는 만큼 기존 합의를 무력화할 수 있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북한이 내년 3월 (한미) 군사연습을 도발로 생각하면 어떤 형태로든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8월 훈련 때보다 수위가 높아지면 북한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내년 3월 한미군사훈련이 북한의 도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계기”라며 “만약 전략무기까지 전개하는 훈련이라면 고강도 무력시위로 반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경우 북한의 도발이 다시 북미 관계로 이어지고 더 강한 도발을 유발하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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