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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사람이 살 수 없는 곳'…천주교를 뿌리 내리다

천호산 자락 자리한 천호성지

150여년 피와 땀으로 일궈내

순례지라기 보다 가을 명소

천호성지 내 부활성당은 다각형 구조의 건축물로 박해를 죽음으로 이겨낸 선조들의 신앙을 형상화하고 있다.




전북 완주군 비봉면 천호성지는 익산시와 경계인 천호산 자락에 자리한 신앙인들의 터전이다. 1839년 기해박해 전후로 인근 지역의 신앙인들이 박해를 피해 깊은 산골짜기인 이곳에 모여들어 교우촌을 이뤘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산세가 험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고 묘사했을 정도로 척박한 땅에 모인 신자들은 화전을 일궈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신앙을 지켜왔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처형돼 천호산 어딘가에 묻혔다고 한다.

가을에 찾은 천호성지는 길 따라 형형색색 물든 단풍을 즐기기에도 좋다.


가을에 찾은 천호성지는 순례지라기보다는 단풍 명소라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천호산 정상에서 시작된 단풍이 산 중턱까지 내려오면서 주변을 울긋불긋 수놓았다. 천호성지는 원래 고흥 유(柳)씨 문중 소유의 땅을 1909년 프랑스 출신 베르몽(1881~1967) 신부와 신자들이 매입해 전주교구에 봉헌했다. 이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명서, 손선지, 정문호, 한재권 등 4명의 성인과 주변 지역 순교자 7명의 유해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성지화되기 시작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뜻하는 천호(天呼)라는 마을 이름도 이때 붙여졌다고 한다.

천호성지는 전주보다 고속도로 익산 IC에 더 가깝게 위치했다. 741번 지방국도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천호마을이다. 마을의 제일 끝 집을 지나 다리실순교자기념관을 통과하면 산 중턱을 깎아 만든 순례자 주차장이 나온다. 총 100만㎡(30만평)에 달하는 성지의 중간지점이다. 위아래로 넓게 형성된 성지에는 실로암 연못, 사제관, 피정의 집, 봉안경당, 순례자의 길, 성인묘역 등이 들어서 있다.

천호성지 부활성당은 다각형의 구조로 일반 성당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변 자연과 하나로 잘 어우러져 있다.




성지의 중심은 가장 최근에 세워진 부활성당이다. 다각형으로 지어진 성당은 박해를 죽음으로 이겨낸 선조들의 신앙을 형상화했다. 내부 역시 다각형 구조로 성당의 중심이 되는 제대 뒤 벽면만 삼각형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좌우 벽면에 난 비대칭의 창문에서 아늑한 햇살이 들어와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부활성당은 2008년 한국건축가협회가 주관하는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천호성지 가톨릭 성보박물관에는 다양한 성물이 전시돼 있다.


성당 바로 아래는 가톨릭 성물박물관이다. 신앙생활의 중심인 ‘미사’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성사’, 순교자들의 피를 기리는 ‘순교’ 3가지 주제로 꾸며져 있다. 신해부터 신유, 기해, 병오, 병인박해까지 당시 천주교인들에게 형벌을 집행하기 위해 사용된 도구도 전시하고 있어 한국 천주교회 순교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천호성지 가톨릭 성물박물관.


천호성지는 나바위성당까지 이어지는 전라북도 ‘아름다운 순례길’ 3코스(24.1㎞)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성지순례객이 아니더라도 가을에는 단풍길을 걸으며 사색을 즐길 수 있다.
/글·사진(완주)=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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