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국가보안법 시행 4개월 만에 홍콩 의회인 입법회가 ‘친중 거수기’로 전락했다. 입법회 70명 의원 중 야권인 범민주파 의원 19명이 전원 물러나면서 홍콩 의회에서는 이제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사라지게 됐으며, 중국의 홍콩에 대한 장악력은 한층 강화됐다.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 11일 ‘애국심’을 골자로 하는 홍콩 입법회 의원의 자격요건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홍콩 독립 조장이나 지원·중국의 홍콩에 대한 통치권 거부·홍콩 내정에 외세의 개입 요청·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 등을 할 경우 입법회 의원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결의안으로 홍콩 정부는 사법 절차 없이 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게 됐다.
홍콩 정부는 이 결의안 채택 직후, 이미 지난 7월 “외세와 결탁해 홍콩 독립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차기 입법회 선거 출마 자격을 박탈해버린 4명의 야당 의원에 대해 의원직을 즉시 박탈했다. 남은 야당 의원 15명은 의원직 박탈 소식에 반발해 12일 의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홍콩 입법회 70명 의원 중 야권인 범민주파 의원 19명 전원이 한꺼번에 물러나면서 입법회는 친중 의원들로만 채워지게 됐다.
홍콩 제1야당인 민주당의 우치와이(胡志偉) 주석은 전날 밤 사퇴 기자회견에서 “의원직 박탈은 얼토당토않은 짓”이라며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의 기본법(미니 헌법)과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완전히 포기했고, 홍콩의 삼권분립을 뿌리째 파괴했다고 성토했다.
입법회가 친중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에도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각 의원은 지역구 주민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입법회에서는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면서 “19명의 (야당) 의원이 떠난다고 입법회가 거수기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제7대 입법회 선거를 9개월 안에 실시할 예정이어서 보궐선거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 제6대 입법회 야당 의원 상당수가 의회 소란 혐의 등 여러 사유로 기소돼 이미 입법회 내 야당의 목소리가 위축된 상황이었으나, 이번 결의안 채택으로 홍콩 정부가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홍콩보안법이나 기본법, 의회법 등의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게 되면서 향후 구성될 입법회에서도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6월 30일 시행된 홍콩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의 시행으로 홍콩에서는 어떠한 행동을 해도 비판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미국 등 서방국가는 홍콩 야당 의원들의 의원직 박탈을 즉각 규탄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1일(현지시간) 밤 성명을 통해 “독재가 홍콩에까지 뻗쳤고, 중국공산당이 입법기관에서 모든 반대의 목소리를 제거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모든 합당한 권력을 동원해 홍콩의 자유를 말살하는 데 책임이 있는 자들을 색출해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반대파 의원의 자격을 박탈하고 괴롭히며 억압하는 것은 중국의 국제평판을 해치고 홍콩의 장기 안정을 훼손한다”고 말했다. 독일 외교부도 “표현의 자유와 다원주의 훼손을 겨냥한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고, 캐나다 외교부는 “중국이 국제적 책무를 저버리고 저버린 것에 깊이 실망했으며 캐나다는 홍콩인들과 계속해서 함께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장덕진 인턴기자 jdj132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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