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15조 원을 삭감하겠다”고 밝힌 정부가 제출한 2021년 예산안(556조원) 이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11조 원 넘게 불어났다. 여야가 ‘주고받기식’으로 매년 각 상임위원회에서 대거 증액하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예산을 삭감해 결국엔 정부 예산안대로 통과되는 관행이 올해도 반복될 조짐이다. 사상 최대 국채 발행을 이유로 대규모 예산 삭감을 외친 야당의 주장이 올해도 빈말로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5일 국회 17개 상임위 중 소관부처 예산·기금안을 의결한 11곳의 예비심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증액·감액 의견을 종합한 순증액 규모는 약 11조4,000억원에 달했다.
국토교통위(2조4,000억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2조3,000억원),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2조2,000억원) 등 이른바 지역구 민원 예산이 집중되는 상임위에서 조 단위로 예산이 증액됐다.
증액된 예산을 보면 국토위에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인 교통시설특별회계 항목 증가분이 1조 739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사업인 새만금 개발 관련 예산도 551억원 늘어났다. 정부가 10억원으로 제출했던 세종의사당 건립 예산도 오송∼청주 연결도로 등 인근 교통인프라 구축 비용이 반영되면서 약 13배인 127억 3,700만원으로 증액됐다.
산자위는 무역보험 기금 출연(1,300억원), 산업단지환경조성(1,010억원),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1,144억원) 등이 늘어났다. 농해수위는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 출연사업(1, 700억원), 맞춤형 농지지원사업(2,016억원), 초등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 시범사업(72억원), 어촌뉴딜300 사업(280억원) 등이 증액됐다. 문화체육관광위에서는 공연예술기반 조성 사업(300억원) 등의 예산 증액이 의결됐고, 외교통일위는 국립평화도서관 예산을 100억원 가량 새로 반영했다. 정무위와 법제사법위 등에서 예비심사를 마치면 예산 증액 규모는 더 불어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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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이달 초 정부가 낸 556조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에 대해 ‘현미경 심사’를 통해 불필요한 예산을 대거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도 예산안은 적자 국채를 90조 원을 찍는다. 내년 말 국가채무는 945조 원으로 올해 805조 원인 본예산 대비 140조원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100대 문제 사업을 꼽아 예산을 적어도 15조 원 이상 삭감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특히 21조 3,000억 원 규모로 편성된 한국판뉴딜 예산의 절반을 줄여 소상공인과 육아·돌봄 예산 등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각 상임위의 심사를 거치자 예산 삭감은커녕 11조 원 이상 증액됐다. 지난해도 야당은 “15조 원 삭감”을 외쳤지만 정작 예산 심사에 돌입하자 상임위에서 약 8조 2,800억 원이 늘어났다. 예결위에서 불요불급한 사업들은 삭감돼 결국 정부 예산안은 512조 3,000억 원으로 당초 정부안(513조 5,000억 원)보다 1조 2,000억 원 줄어들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가 부재 증가를 이유로 줄이겠다던 15조 원의 10분의 1도 삭감 못 한 것이다.
올해도 상임위에서 11조 원 이상 예산이 증액된 것을 볼 때 야당의 말대로 예산이 대거 삭감될 분위기는 아니다. 국회가 올해도 각 상임위에서 증액된 예산을 삭감할 때 속기록도 남지 않은 예산 ‘소소위’를 통해 여야가 주고받기식으로 예산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여야 할 것 없이 의원들이 지역구 민원성 사업을 쪽지 예산으로 끼워 넣고 부풀려진 다른 사업들을 조정해 정부 예산안에 가깝게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예결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홍근 의원은 언론을 통해 “코로나19 위기 돌파라는 측면에서 불요불급한 부분은 덜어내고, 경기 부양을 위한 측면은 살려 나갈 것”이라며 “법정 시한인 12월 2일 내로 예산안을 반드시 처리해내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간사인 추경호 의원도 “상임위 논의를 존중하겠지만, 국가 살림의 전체적인 규모와 사업별 시급성, 우선순위 등을 꼼꼼히 심사해 최종적으로 예산 틀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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