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관왕을 휩쓸었던 최혜진(21·롯데)의 ‘무승’은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최대 이변 중 하나로 여겨졌다. 출전한 대회에서 단 두 번을 빼고는 모두 톱10에 든 그는 그린 적중률 1위, 평균타수 3위 등으로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해엔 무려 5개나 수집했던 우승컵이 올해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언제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최혜진이 마지막 승부에서 마침내 해피엔딩의 가을 동화를 완성했다.
최혜진은 15일 강원 춘천의 라비에벨CC 올드코스(파72)에서 열린 KLPGA 투어 2020시즌 최종전인 SK텔레콤·ADT캡스 챔피언십(총상금 10억원) 3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3개, 보기 2개를 묶어 3언더파 69타를 쳤다. 최종합계 12언더파 204타를 기록한 그는 유해란(19·SK네트웍스·11언더파)을 1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10월 말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제패 이후 1년여 만에 시즌 첫 승을 따낸 최혜진은 아마추어 시절 거둔 2승을 포함해 투어 통산 10승을 채웠다. 다수의 상위 입상으로 이미 3년 연속 대상(MVP) 수상을 확정한 그는 올해 마지막 하나 남은 우승트로피를 차지하며 ‘무관의 대상’ 위기를 최종전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다. 최혜진은 1993년 대상이 제정된 이후 처음으로 우승 없이 대상을 받는 선수가 될 뻔했다. 2억원의 우승상금을 손에 넣은 그는 상금랭킹을 12위에서 6위(5억3,827만원)로 끌어 올리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날 우승도 쉽지만은 않았다. 선두 안송이(30·KB금융그룹)에 1타 뒤진 2위로 출발한 최혜진은 5번홀(파5) 샷 이글로 단숨에 선두로 점프했다. 약 70야드를 남기고 친 볼이 홀에 그대로 꽂히는 ‘덩크 슛’ 이글이 됐고 결국 ‘우승 축포’가 됐다. 기세를 몰아 6번홀(파4)에서 2m 버디를 잡으면서 한때 3타 차 선두를 달렸다. 안송이가 뒷걸음을 하는 사이 장하나(28·비씨카드)와 김효주(25·롯데) 등이 타수를 줄이며 추격했지만 막판에는 각각 대상과 신인상을 확정한 최혜진과 유해란의 우승 경쟁으로 압축됐다.
유해란은 전반에 2타를 줄이며 기회를 노리다 후반 들어 11·12번홀과 15번홀 버디를 몰아치며 맹추격했다. 1타 차로 쫓긴 최혜진은 16번홀(파4)에서 2.2m 파 퍼트를 놓쳐 공동 선두를 허용하며 가슴을 졸여야 했다. 유해란은 17번홀(파3)에서 티샷이 그린을 지나친 위기를 잘 넘겼으나,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그린 왼쪽 벙커에 빠뜨린 두 번째 위기에선 이날의 유일한 보기를 적어냈다. 1타 차 선두를 되찾은 최혜진은 17번(파3)과 18번홀(파4)을 침착하게 파로 마무리해 우승을 결정지었다. 시즌 1승에 세 번째 준우승을 보탠 유해란은 상금랭킹 2위를 차지하며 성공적인 루키 시즌을 끝냈다.
3타를 줄인 김효주와 4타를 줄인 장하나가 나란히 10언더파 공동 3위로 마쳤다. 김효주는 7억9,713만원을 쌓아 2014년을 이어 6년 만에 두 번째 상금왕 타이틀을 확정했고 평균타수 1위(69.56타)도 차지했다. 김효주는 박현경, 안나린과 함께 2승으로 공동 다승왕까지 3관왕에 올랐다. 대회 2연패를 노린 안송이는 7타를 잃고 3언더파 공동 21위로 밀려났다.
최혜진은 우승 뒤 “작년에 워낙 잘했다 보니 올해는 잘하고 있어도 우승이 안 나와 주변에서 ‘잘 안 된다’는 말을 듣는 게 힘들었다”고 마음고생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았다. 그는 이어 “기분 좋게 시즌을 마무리하게 됐으니 며칠 편안하게 강아지와 시간을 보낸 뒤 체력 훈련과 쇼트게임 연습에 집중해 내년에 더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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