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오바마케어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연방대법원의 심리가 시작됐다. 오바마케어가 전 국민의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것이 정당한지가 주요 쟁점이다. 오바마케어가 선택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의 전통에 반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논란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오바마케어가 초래한 의료비 증가가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도 시행 초기 국민의 의료편익을 높이고자 추진됐으나 의료 수요를 증가시켜 의료비가 늘어나고 의료 재정이 고갈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제도는 보험의 원리가 아니라 세금 징수와 같은 방식으로 구축된 제도다. 보험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다 보니 정작 중병에 걸리면 국민건강보험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국민건강보험의 한계 속에 어쩌면 민간에서 실손의료보험이 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올해 3,800만명이라고 한다. 국민 대부분이 실손보험에 가입했다는 증거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체제는 공적부조, 국민건강보험, 그리고 민간 실손의료보험으로 이뤄진 다층구조의 의료보험체제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을 전방위적으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모순은 더 확대되고 있다. 의료비용은 급증하고 국민은 더 많은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보다 의료수가를 통제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의료수가 통제로 일부 병원은 비정상적인 방법을 선택하거나 파산한다. 결과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부는 민간보험에도 영향을 미쳐 실손의료보험의 보험료와 상품구조도 규제의 틀에 묶어버렸다. 여기저기 이해할 수 없는 규제들이 생겨나고 공사보험 다층구조의 근간은 흔들리고 있다.
국민에게 합리적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는 대안은 무엇인가. 우선 현실에 기반한 국민건강보험의 내실화와 이를 보완하는 민영보험의 기능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이 보편적으로 필요한 질병을 보장하고 노후건강보장과 저소득층의 건강보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선택과 보험의 원리로 운영되는 실손의료보험과 같은 민영보험이 양질의 의료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가입자의 선택과 보험사의 급부 간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에서는 공공성을 확보하고 민영보험에서는 가입자와 보험사 간 비용부담과 책임이 시장원리에 따라 조화롭게 적용됨이 바람직하다.
의료계가 현재와 같이 비급여에 의존하지 않도록 국민건강보험의 의료수가를 정상화해야 한다. 동시에 의료서비스의 표준화 및 의료정보 공유로 의료기관의 경쟁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민영보험 영역에서는 실손의료보험과 의료기관 간 조율을 통해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의료기관에 부담하는 진료비를 보험사가 협상할 수 있는 조치도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고 일부 의료기관의 편법진료 및 과잉진료를 방지할 수 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정책 추진과 가격 통제로 국민건강보험과 민영보험 모두가 흔들리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민간 실손의료보험이 존폐의 위기에 몰리는 듯하다. 실손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가 30%나 줄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가 의료보험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밝히고 그 해법을 찾기는커녕 손쉽게 민영보험상품의 가격을 통제하고 보장을 규제하면 문제는 더 악화한다.
의료 분야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도 국민건강보험과 민영의료보험 간 조화가 필요하다. 각자의 강점을 살려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 국민은 합리적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가격 규제로 민간의료보험이 존립할 수 없다면 사회적 안전망은 무너진다.
현재까지 의료인들은 헌신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지켜왔으며 국민건강보험의 틀 속에서 여러 어려움을 감내해왔다. 인기영합적 정책으로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어느 때보다 합리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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