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 밖에 위치한 중림시장은 조선 시대 칠패시장으로, 근대에는 경성수산시장으로 불리던 큰 시장이었다. 한강에서 만초천을 따라 수많은 물건이 모여들며 성황을 이뤘던 중림시장은 노량진과 가락동에 거대한 수산시장이 생기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시장이 번창할 당시 상인들이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얼기설기 지었던 언덕배기의 창고도 버려진 공간이 돼버렸다. 이 건물은 10년 이상 동네의 흉물로 남아있다가 최근 서울로 주변 도심재생사업의 대상지가 되면서 현대적인 모습으로 새 단장했다.
도시재생사업의 앵커시설이 흔히 주민들을 위한 회합의 장소로 사용된다. 하지만 중림창고는 도심에 가까운 위치와 주변의 다양한 유동인구를 고려해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단, 새로 지었으나 원래 있었던 듯한 건물이 되길 희망하는 주민들의 요청도 담아야 했다.
중림창고는 길이 55m, 좁은 폭은 1.5m, 넓은 폭은 6m, 대지고저차 8m의 길가에 위치해 있다. 4m의 언덕길을 사이에 두고 성요셉아파트와 마주하고 있다. 아파트 앞길은 오랜 세월 여러 사람의 필요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들쑥날쑥한 경계와 삐죽삐죽 튀어나온 가게들이 독특한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중림창고는 이런 동네 길의 이미지를 반영해 설계했다. 건물 내부에 들어가면 긴 건물 전체가 개방된 하나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상 높은 공간과 낮은 공간, 2층으로 연결된 공간, 외부와 연결된 공간 등을 다양하게 구성해 이용자가 가변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건물의 특징을 살려 행인들이 거리를 걷다 언제든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1층의 전면을 개방한 것도 중림창고 설계의 포인트다.
홍성용 심사위원은 “모든 건축은 공공재라는 표현처럼 공공 발주 건축과 민간 발주 건축 모두 도시에서 공공성이 다양하게 표현된다”며 “중림창고는 그런 점에서 민간과 공공의 경계에 있을 법한 작품이다. 도시 공간의 틈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평했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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