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 이후 약 3년 만이다. 배우 정우가 ‘이웃사촌’을 통해 스크린 나들이에 나선다. 그의 무기이자 특기인 부산 사투리와 현실감 넘치는 생활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25일 개봉하는 ‘이웃사촌’은 좌천 위기의 도청팀이 자택격리된 정지인 가족의 옆집으로 이사와 낮이고 밤이고 감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7번방의 선물’로 1,280만 관객을 모은 이환경 감독이 7년 만에 내놓는 영화로, 정우와 오달수의 색다른 조합에 기대가 쏠리고 있다. 영화는 오달수의 미투 의혹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3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1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는 개봉이 늦어진 것과 관련해 “답답함, 속상함보다는 기다리는 시간이 감사했다”며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체감상 영화를 찍은 지 오래됐다고는 생각이 안 들어요. 당시의 감정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거든요. 개봉 관련해서는 제작진이나 투자배급사 관계자분들이 좋은 시기, 적절한 시기에 잘 판단하셔서 진행하는 거니까 그때를 응원하면서 기다리는 거죠. 개봉을 기다리면서 궁금증은 계속 생겼어요. 기대 반 걱정 반 하면서요. 촬영 당시에 들었던 감정이 스크린으로 옮겨졌을 때는 어떻게 표현됐을지 궁금했거든요. 감회가 참 새로웠고, 복합적으로 여러 감정이 들었어요. 내적으로 많은 경험을 하면서 성장한 것 같아요.“
‘이웃사촌’에서 정우가 맡은 대권은 정치인 의식(오달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청해야 하는 도청팀장이다. 의식을 도청하기 위해 이웃으로 위장해 옆집에 살게 되는 대권은 의식의 인간적인 모습에 점차 변화한다. 가부장적이고 차갑기도 하지만, 점점 사람 냄새 나는 대권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냈다. 정우는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해야 해 압박감과 중압감을 느끼기도 했다.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다 보니까 하루도 허투루 촬영을 한 적이 없었어요. 정신적·육체적으로 고됐던 시간이 많았죠. 뭔가 ‘내가 이 작품에서 해내야 한다’는는 장면들이 꽤 있었어요. 그런 장면에서 부담을 갖고 촬영을 하게 되니까 심적으로 압박감이 있었어요.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부담감과 긴장감을 가지는 건 당연한데, 주연배우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게 되면 더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영화는 배우들의 진심을 담은 연기와 이웃 케미스트리를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도청을 위해 만난 정우와 오달수가 이웃이 돼 우정을 점층적으로 쌓아가는 과정이 영화의 백미다. 또 김병철, 이유비, 조현철, 염혜란 등 조연 배우들의 색다른 케미스트리 또한 영화에 다채로운 매력을 더한다.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만큼 현장이 시끌벅적했을 것 같지만, 의외로 말수가 없는 배우들이 모여서 촬영장이 조용했다고.
“저는 현장에서 선배, 후배 사이의 딱 중간 위치였어요. (이)유비와 아들로 나온 (정)현준이는 뛰어다니면서 발랄했죠. 선배 배우들은 말수가 많진 않으셨어요. 본인들이 맡은 역할에 충실했고, 연기적인 부분에 집중을 해서 촬영을 하다 보니까 되려 촬영할 때가 더 유쾌하고 즐거웠어요. 기존에 유쾌하고 코믹한 모습을 보여줬던 오달수 선배도 현장에서 말씀이 없으셨어요. 호흡하면서 잘 받아주시고, 묵묵히 지켜봐 주시고 기다려주셨죠. 연기 장인같은 느낌이었어요.”
1985년이 배경인 ‘이웃사촌’은 당시의 시대상과 감성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는 평을 받는다. 골목길의 간판, 차량, 우유병, 재래식 변소까지 디테일한 프로덕션이 돋보인다. 정우는 80년대를 표현하기 위해 의상에 신경 썼고, 밤낮으로 옆집을 엿들어야 하는 도청팀장으로서 푸석푸석한 피부와 충혈된 눈을 의도치 않았지만 준비해갔다.
“영화는 역사적 고증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사람 간의 우정, 도의, 따뜻한 드라마를 표현해요. 그래서 팩트보다는 그 속에 있는 감정들을 표현해야 해서 스토리에 집중했죠. 그래도 의상을 통해 대권이를 나타낼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어요. 초반에는 거칠고 투박한 대권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어두운 색 계통의 의상을 입었고, 점점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따뜻하고 친숙해 보이는 의상들을 입었어요. 그리고 도청을 하려면 밤이고 낮이고 잠을 못 자잖아요. 영화에서 대권이의 눈을 보면 항상 충혈돼 있어요. 실제로 잠을 잘 못 자고 촬영을 하면 항상 눈이 빨개졌는데, 오히려 스태프들은 좋아하더라고요. 컨디션이 좋아서 눈이 맑은 날에는 ‘이걸 더 피곤하게 해야되나’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웃음)”
지난 3년 동안 정우는 대중의 눈에서는 조금 멀어졌지만,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해왔다. ‘이웃사촌’ 외에 영화 ‘뜨거운 피’, ‘더러운 손에 손 대지 마라’를 촬영했다. 이후 1년 3개월의 공백기를 가졌고, 현재는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X’를 촬영 중이다. 그는 시간이 공백기가 아닌 충전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자의 반 타의 반 쉬게 됐어요. ‘이웃사촌’을 기점으로 연달아 세 작품을 하면서 에너지가 많이 고갈됐어요. 배우들은 연기를 할 때 감정을 많이 꺼내 쓰는데, 그 감정이 많이 고갈이 된 거죠. 그래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충전하는 시간을 통해서 다시 채우는 시간을 가졌어요. 공백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값진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운동을 하는 시간을 많이 늘렸어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생활을 하다 보면 밤낮이 없잖아요. 규칙적으로 생활하기가 쉽지 않은데, 잠시 쉬는 동안에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을 했어요.”
2001년 영화의 단역으로 데뷔한 정우는 영화 ‘바람’을 통해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을 시켰다. 이후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통해 주연급으로 발돋움했다. 단역부터 주연까지 차근차근 올라온 정우는 “매 작품을 통해 성장을 할 수 있었다”며 20여 년의 배우 생활을 되돌아봤다.
“배우로서 아직 많이 부족해요. 예전에는 급했어요. 어떤 목표치를 정해두고 달리기만 했거든요. 지금은 내가 앞만 보고 왜 그렇게 달리려고 했을까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주변도 좀 돌아보고, 가끔 숨을 고르기도 해도 되지 않나 생각이 들죠. 그러면 기존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천천히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단순하면서도 쉬울 것 같은데 그게 잘 안됐던 것 같아요. 1년 3개월 정도 쉬면서 여러 생각을 돌이켜봤어요. 꿈이자 좋아서 하는 배우인데 하루하루 연기를 해나가고 있는데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거든요. 또 다른 의미에서 돌파구를 찾고 싶었어요. 매번 작품을 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배움이 있는 것 같아요. 말로 표현이 잘 안돼요.(웃음)”
/이혜리기자 hye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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