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년 11월20일 아침8시, 태평양 갈라파고스제도 서쪽 해역. 길이 26.7m, 배수량 238톤급 포경선 에섹스(Essex)의 선원들이 모처럼 분주하게 움직였다. 학수고대하던 고래 떼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출항 14개월이 넘도록 고래를 못 보고 무인도에서 거북이나 잡던 선원들은 작살을 던졌다. 놀란 고래가 요동친 꼬리에 맞아 작은 포경 보트 한 척이 크게 파손됐으나 드문 일은 아니었다. 선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바로 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터졌다. 길이 24m, 무게 80톤쯤으로 보이는 초대형 향유고래 한 마리가 본선을 들이박았다. 꼬리로 내려치고 몸통으로 부딪치는 두 차례 공격으로 에섹스호는 10분 만에 가라앉았다. 세척의 보트에 피신한 선원 20명은 두 달 반 동안 망망대해를 표류한 끝에 구조됐다. 물과 식량이 떨어지자 거북이를 잡아먹고 급기야 차례를 정해 동료를 죽여 인육을 먹어가며 버텼다. 구조 당시 생존자는 불과 7명. 실종 5명을 빼면 8명이 식량으로 희생된 셈이다.
생존자들은 다시 바다로 나갔다. 에섹스호의 선장 조지 폴라드(사고당시 29세)는 다른 포경선과 상선을 연이어 탔으나 연달아 좌초하는 불운을 겪었다. 1등 항해사(23세) 오언 체이스는 평생 배를 타 포경선장으로 경력을 마쳤다. 가장 어렸던 사환 토머스 니커슨(14세)은 상선 선장을 지냈다.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다시 배에 오른 이유는 간단하다. 돈. 포경산업은 황금산업이었다. 대형 향유고래를 잡아 기름을 짜서 고급 양초와 화장품, 의약품, 공업용 세제로 썼다.
특히 미국 포경산업은 세계 1위를 자랑하며 다른 산업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공장의 불을 밝히고 야간 노동이 일상으로 굳어졌다. 생태역사학자인 제이슨 라이벌이 ‘미국의 산업혁명은 고래의 희생으로 이뤄졌다’고 말할 정도다. 페리 제독이 일본의 개항을 강요한 목적도 미국 포경선단의 배후기지를 확보하려는 데 있었다. 석유 시대 개막과 함께 포경산업도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에섹스호의 영향은 지금도 살아 있다.
젊은 시절 포경선을 탔던 허먼 멜빌은 에섹스호 얘기를 바탕으로 1850년 ‘불멸의 해양소설’로 손꼽히는 ‘모비딕(백경)’을 발표, 세계적 작가로 떠올랐다. 2015년 개봉작 ‘하트 오브 더 씨’의 소재도 에섹스호에서 따왔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명칭도 여기서 나왔다. 애초 이름은 피쿼드.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포경선의 선명을 상호로 쓰다가 1등 항해사(스타벅)의 이름으로 바꾼 뒤 대박이 터졌다고.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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