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동남권신공항으로 추진하던 ‘김해신공항안’을 사실상 백지화하고 ‘가덕도신공항’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국무총리실 검증위원회의 결론이 왜곡 해석됐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검증위는 김해신공항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촘촘한 재검토를 요구한 것인데도 당정이 이를 무작정 ‘김해신공항 불가’로 결론 짓고 후속 절차마저 생략한 채 가덕도신공항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검증위에 참여했던 검증위원들의 목소리가 다양한 통로를 통해 노출되면서 여권의 ‘아전인수식 행보’를 둘러싼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김수삼 검증위원장마저 정치권 행보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여권의 가덕도신공항 추진 논리가 더욱 흔들리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총리실에 따르면 검증위는 지난 9월25일 전체회의를 열어 법제처 유권해석에 이상이 없을 경우 ‘문제만 보완한다면 김해신공항이 동남권 관문 공항으로는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날 위원 20명 중 13명이 참석해 12명이 이 안에 찬성했다.
하지만 11월10일 법제처가 ‘공항 부지 주변 산을 방치하려면 부산시와 협의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결과는 달라졌다. 이 직후인 이달 12일 김 위원장과 안전, 시설운영·수요, 환경, 소음 분과위원장 등 총 5명은 9월25일 의결한 내용과는 다소 다른 ‘근본적 재검토’를 골자로 하는 발표문을 최종 확정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김해신공항안 유지에 대해 이견이 빚어지면서 일부 위원들의 의견만으로 결론을 바꾼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법제처 유권해석에도 상당수 위원들의 의중은 가덕도 등 아예 다른 곳에 공항을 설립하라는 게 아니라 기존 김해공항 확장안을 좀 더 보완해야 한다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검증위 수뇌부가 부산 지역 여론과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준비하는 민주당 등 정치권의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다만 검증위의 입장 변화는 이날 김 위원장의 입장문으로 비교적 명확해졌다는 평가다. 검증위가 꺼내 든 최종 발표문 역시 법제처의 해석만 반영한 것일 뿐 여권의 가덕도신공항 추진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언론보도를 반박하는 형태로 입장문을 내면서도 “가덕 등 특정 공항과 연결하거나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검증위 결론 취지를 규정했다.
실제로 검증위 발표 당시 발표문과 보도자료에는 어디에도 ‘가덕’이라는 표현이 없었다. ‘입지를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문구도 없었다. 검증위는 안전 부문에 대해 “산악 장애물 존치를 전제로 수립된 국토교통부의 기본계획안은 근본적인 검토와 조류충돌 방지대책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만 했다. “김해신공항 계획안은 상당 부분 보완이 필요하고 확장성 등 미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입지 변경의 가능성을 열어둔 듯한 결론을 내렸을 뿐이다. 검증위원들도 결론 발표 이후 각종 언론을 통해 ‘김해신공항 폐기·백지화로 결론을 낸 게 아니다’ ‘김해신공항을 보완하기 위해 재시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미였다’는 등 정치권과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내놓았다.
검증위 보고서의 핵심 근거가 된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법제처는 ‘공항 부지 주변 산을 방치하려면 부산시의 협의 요청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이달 초 검증위에 전달했는데 정치권은 이것을 곧바로 ‘김해신공항은 절차적 정당성과 사업 타당성이 떨어지므로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중심을 잡아야 할 국토부마저 동남권신공항 입지 후보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는커녕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토부는 가덕도를 후보지로 내세우며 동남권신공항 사업으로 인한 사회적·지역적 갈등 격화와 행정력 낭비 등의 명분을 내세울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논란이 가속화되자 대다수의 검증위원들은 일단 추가 발언을 극도로 자제하는 자세로 돌아섰다. 서울경제 취재진이 위원들에게 연락을 취한 결과 대다수는 아예 취재에 응하지 않았고 일부는 연락은 닿았으나 발언조차 하기 싫다며 모든 답변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검증위 활동과 결론이 곧바로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분위기였다. A위원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멋모르고 말을 했다가 그렇게(곤란하게) 돼 답변을 더 이상 안 하는 게 나을 거 같다”고 밝혔다.
총리실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강하게 내비쳤다. 검증위의 결론은 총 80회의 회의를 거쳐 나온 내용이고 법제처의 유권해석만으로 나온 것도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총리실의 한 핵심관계자는 “9월 전체회의 때 20명 중 13명만 참석한 것은 강의나 부모 봉양에 따른 외출 자제 등이 이유였다”며 “정족수나 의결 방식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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