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수사를 제대로 했느냐가 내외부 평가의 척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10년 이상 수사 업무를 맡아온 한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현재는 수사 대상이 누구인지 또 현 정권과 연관이 있는지 등에 따라 검찰은 응원을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적폐가 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본분에 충실했을 뿐인데, 특정 수사를 사이에 둔 정치적 여파가 전체로 확대 적용되면서 검찰이 논란의 한 가운데 서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 수사·유지를 담당해온 이정섭 수원지검 부장검사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이 부장검사는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김미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20일 재판에서 “오로지 증거와 법리만 갖고 판단을 내려주실 것으로 믿고, 저희도 그런 마음으로 수사를 했다는 심정을 알아달라”고 밝혔다. 특히 그동안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 수사 과정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이 부장검사는 “수사팀 구성원은 그대로인데 김학의 수사를 할 때 박수를 치던 분 중 이 수사를 할 때는 비난을 했다”며 “왜 이런 비난을 받을까 의아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피아는 정치와 전쟁에서는 생길 수 있지만, 형사의 영역에서는 생각하기 어렵다”며 “수사 입장에서 피아가 있다면 범죄를 저지르고 은폐하려는 ‘피’와 밝히려는 ‘아’가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장검사의 토로에 대해 검찰 내부에도 똑같이 느끼는 이가 많을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각종 수사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윤석열 검찰총장 사이 ‘불협화음’까지 더해지면서 검찰이 이른바 ‘정치적 바람’에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만큼 편 가르기 논리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검찰 내 목소리가 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도 “현직 시절 고소·고발 등 형사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지금껏 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받은 기억이 없다”며 “수사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비난을 받느냐, 박수를 받느냐가 결정되면서 검사나 수사관들의 자존감도 땅에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논란의 중심에 서자 검찰 안팎에서도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 자성론도 차츰 고개를 들고 있다. 현재 수사 등과 관련해 비난을 받고 있는 게 현 정치 상황과도 연관이 있기는 하나 더 깊게 들여다 보면 과거 검찰이 보인 행보와도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현 상황을 초래한 게 이른바 ‘검찰의 업보’라는 얘기다.
또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라는 글자 뒤에 ‘정권의 시녀’, 견찰(犬察)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닌 이유는 일부 검사들이 보인 정치 성향 때문”이라며 “결과론적 측면이 강하기는 하나, 그동안 살아있는 권력에 제대로 칼을 드리우지 못하고, 힘을 잃은 쪽이나 약자에게 강자로 군림했던 데 대해서는 검찰 스스로 반성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그렇다고 현재와 같이 수사 시스템이 무너지면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라며 “검찰은 스스로 개혁을 받아들이면서, 의미 없는 비판에 약해지기보다는 수사에 대해선 ‘성역이 없다’는 모습을 보여야 신뢰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