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지난 4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에 대한 국제 조사를 요구한 이후 중국이 호주에 대해 사실상 전방위적 보복에 나선 가운데 이번에는 음식 문화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23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네티즌과 중국계 호주인들은 호주 공영 ABC 방송이 최근 어린이 채널에서 중국인들이 곤충이나 쥐, 머리카락 등을 요리에 사용한다는 점을 암시하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 방송에서 백인 여배우가 고대 중국 황후로 출연해 요리한 곤충 등을 먹으면서 “당나라 시대에 곤충을 먹는 것은 일상적”이라고 말한 부분을 문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 중국 고대 시대에 메뚜기 등을 식용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게 호주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에서 중국 네티즌은 중국인을 심각히 비하한 인종 차별적 행위라며 ABC 방송에 프로그램 삭제와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부 중국계 호주인들은 ABC 방송에 중국인 차별을 항의하는 온라인 청원에 나섰다. 이들은 “이번 프로그램은 호주 어린이들에게 인종 차별의 씨앗을 뿌리고 학교에서 중국 학생들을 괴롭히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웨이보의 한 중국 네티즌은 “이런 인종차별적 행동은 너무 편협하며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가장 비열한 인종주의자들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ABC 방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어린이 채널 방송까지 문제가 된 것은 최근 중국과 호주의 감정싸움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의 동맹국인 호주는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독립 조사를 요구하고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호주의 5세대(5G) 이동통신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막았으며 호주 의원들도 중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자 중국은 사실상 전방위 보복에 나서 지난 5월 호주의 4개 도축장에서 생산된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호주산 보리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은 또 자국민에게 호주 유학과 관광을 자제하도록 권고했다. 이뿐 아니라 호주산 와인을 비롯한 최소 7개의 품목에 사실상의 수입 금지 조처를 했다.
호주 캔버라 주재 중국대사관은 지난 17일 현지 언론 기자들을 불러 호주 측의 반중(反中) 사례 14가지를 적시한 문건을 전달하며 호주를 비판하기도 했다. 중국 측은 호주가 중국의 인권 문제나 홍콩, 대만,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문제 등은 중국 공산당이 매우 민감하게 여기는 핵심 이해관계라면서 호주 정부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중국대사관은 호주가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독립 조사를 요구한 것과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호주의 5G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막은 것 역시 호주의 대표적 반중 정책으로 꼽았다.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의 호주 언론 보도와 의원들의 발언도 문제 삼았다.
나아가 이 자리에서 한 중국 외교관은 “중국은 화가 났다. 중국을 적으로 만들면 중국은 적이 될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고 나인뉴스와 시드니모닝헤럴드 등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호주 측에 중국을 전략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한 호주 장관들의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