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홀(파5) 김세영(27·미래에셋)의 세 번째 샷이 다소 길어 깃대를 5m 남짓 지나쳤다. 3타 차로 추격해온 앨리 맥도널드(미국)는 2m 가량의 버디 기회를 만들었다. 자칫 격차가 1~2타로 좁혀질 수도 있었던 상황. 그러나 먼저 친 김세영의 버디 퍼트가 왼쪽으로 휘어져 홀 속으로 떨어진 반면 맥도널드의 짧은 퍼트는 홀이 외면했다. 오히려 4타 차로 리드를 벌리며 최대 고비를 넘긴 김세영은 이후 이렇다 할 위기 없이 3타 차로 정상 고지를 밟았다.
김세영은 유독 극적인 우승이 잦아 ‘역전의 여왕’으로 불리지만 선두 자리를 지키는 ‘뒷문 단속’에도 일가견이 있다. 23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펠리컨 챔피언십(총상금 150만달러)에서 통산 12승째를 거둔 그는 이번을 포함해 8차례 우승을 최종라운드 선두로 출발해서 따냈다. 연장전 전적은 4전 전승이다. 뒷심과 승부근성이 강하다는 의미다.
김세영은 이날 미국 플로리다주 벨에어의 펠리컨 골프클럽(파70)에서 끝난 대회에서 둘째 날 차지한 순위표 맨 윗줄을 끝까지 지켜내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지난달 12일 KPMG 여자 PGA챔피언십 제패 이후 한국에서 시간을 보냈던 그가 5주 만에 수확한 시즌 2승째다. 메이저대회 우승 직후 출전 대회에서 또 샴페인을 터뜨린 것은 2016년 에리야 쭈타누깐(태국) 이후 4년 만이다. 이날 버디 3개와 보기 3개로 이븐파 70타를 친 김세영의 우승 스코어는 여자 PGA 챔피언십 때와 똑같은 14언더파 266타였다.
이번 우승으로 김세영은 시즌 종료까지 3개 대회를 남기고 주요 부문 타이틀 석권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았다. 우승상금 22만5,000달러(약 2억5,000만원)를 받아 시즌상금 113만3,219달러를 쌓은 그는 이 부문 1위였던 박인비(106만6,520달러)를 제치고 선두에 나섰다. 올해의 선수 포인트에서도 30점을 보태 106점이 되면서 1위였던 박인비(90점)를 앞질렀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에 불참했다. 평균 타수 부문 1위(68.11타)를 유지한 김세영은 다승에서도 교포선수 대니엘 강(미국)과 공동 1위가 됐다. 2위인 세계랭킹에서도 고진영과의 격차를 좁히며 생애 첫 1위 등극에 다가섰다.
한국 선수 LPGA 투어 통산 승수로는 신지애(11승)와 공동 3위에서 단독 3위가 됐다. 김세영보다 더 많은 우승컵을 수집한 선수는 25승의 박세리(43·은퇴)와 20승의 박인비뿐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5승을 거둔 김세영은 미국 무대에 데뷔한 2015년 3승을 시작으로 6년 연속 최소 1승을 쌓았고 2016년(2승), 2019년(3승)에 이어 개인 통산 네 번째 멀티 우승 시즌을 만들었다. 올해 한국 선수들의 합작 승수는 5승으로 늘었다.
이날 5타 차 선두로 출발한 김세영은 3타 차로 쫓긴 14번홀에서의 중거리 버디에 이어 15번홀(파3)에서는 벙커에서 친 두 번째 샷을 홀 바로 옆에 붙여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전날 3라운드에서 맥도널드가 홀인원으로 1타 차까지 추격하자 14~17번홀 4연속 버디로 달아났던 김세영에게는 14번이 행운의 홀이 된 셈이다.
LPGA 투어 홈페이지는 “김세영이 그동안 세계 최고의 선수를 논의할 때 간과돼 왔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라고 운을 뗀 뒤 “27세의 나이와 성과를 고려하면 슈퍼스타로 손색없다”고 평가했다. 김세영은 “우승은 언제나 즐겁다”고 소감을 밝히고 “여자 PGA챔피언십 우승으로 메이저에서도 마음 편하게 임할 수 있다. 이는 (12월10일 개막하는) US 여자오픈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메이저 2연승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박희영(33)이 1언더파 공동 15위, 전인지와 허미정이 이븐파 공동 20위에 올랐고 올해 처음 LPGA 투어 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세계 1위 고진영은 3오버파 공동 34위로 마감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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