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가 가능한 외국인이더라도 경찰이 피의자 신문을 할 경우에는 통역이나 신뢰관계인 등의 참여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23일 인권위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외국인을 상대로 통역 제공 여부 등의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경찰관들에 대해 징계조치와 함께 직무 교육을 할 것을 경찰청장 및 해당 경찰서장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날 인권위에 따르면 모로코 국적의 A씨는 지난 3월 이삿짐 사다리차 일을 하던 중 처음 보는 행인 B씨가 욕설을 하고 사진을 촬영하자 위협을 느끼고 A씨를 밀친 뒤 112에 신고했다. A씨는 출동한 경찰에게 폭행은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경찰은 밀친 것도 폭행죄에 해당함을 설명하고 출동 10여분 만에 A씨를 현행범 체포했다. B씨에게는 자진출석을 안내했다. A씨는 이후 검찰 조사를 받고 무혐의 처분됐다.
이에 A씨의 아내는 인권위에 A씨가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유로 통역 없이 피의자 신문을 받은 것은 평등권 침해라는 내용의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A씨는 2012년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며 한국에 정착해 8년 정도 거주해왔다. A씨는 한글을 일정 수준 읽고 쓸 수 있지만 어려운 어휘를 쓰거나 길게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A씨는 ‘현행범’ ‘피의자’ 등의 법률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인권위는 “한국어로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형사절차에서의 진술은 다른 문제”라며 “외국인의 경우 우리나라 형사절차에 대해 생소하거나 이해가 부족할 수 있으므로 불이익이나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인권위는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진술만으로 통역 없이 조사를 받는 것에 대한 피해자의 명시적인 동의로 볼 수 없다”며 “명시적인 동의로 용인하거나 양해하는 경우 외국인 범죄 수사에 있어 형사절차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의사소통의 불완전성 등을 이용하는 임의성을 가장한 강제 수사나 강압 수사가 행해질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외국인 조사에 있어 통역의 제공 여부를 확인하는 의사에 대하여 보다 엄격한 증명이 요구된다”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피의자 신문에서 통역 제공 여부와 신뢰관계인 참여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미란다원칙 고지 확인서·임의동행 확인서 등에 대해 다양한 언어로 번역할 것을 권고했다.
/방진혁기자 bread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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