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검증위원회가 지난 17일 김해신공항 추진은 안전문제와 관련한 절차적 하자 및 미래 수요변화 대비 확장성 제한 등으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백지화 입장을 공식화했다. 김해신공항 건립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지난 14년간 이어져 온 영남권 신공항 유치를 둘러싼 갈등은 다시 거세질 기세다. 특히 공항 입지로 거론된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되는 특별법이 발의될 예정이어서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재확산되면서 꺼져가는 실물경제의 불씨를 살리는 길이 요원한 지경에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이 국민의 한숨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사업은 2002년 대선 때 당시 후보로 나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공항 입지 선정을 둘러싸고 지역 간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히면서 끊임없는 갈등이 빚어지는 등 신공항 사업은 매번 좌초를 경험했다.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신공항 유치를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이 지속되자 세계적 공항설계 전문가 그룹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의뢰해 영남권 신공항 사전 타당성 검토를 실시했다. 이 용역 결과로 가덕도신공항이나 밀양신공항 건설 계획보다 ‘김해공항 확장’이 가장 적절한 대안으로 결정된 것이다.
정부는 국가재정법상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대규모 재정 투입사업에 대해 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면밀하게 검증·평가하는 예비타당성 조사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예타제도는 경제성 분석, 정책적 분석, 지역균형발전 분석을 총괄적으로 한다. 원래 예타제도는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된 제도로, 이전의 부실한 타당성 조사로 무리한 사업들이 다수 추진됐던 사례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예타제도는 대규모 재정사업 시행 전에 그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조사결과를 제시해 합리적인 재정집행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또한 예타제도를 통해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 미국·영국·일본도 예타제도와 유사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 미국과 영국은 톱다운 예산제도를 시행하면서 사업부처 자체적으로 타당성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영국은 관문심사제도(gateway review)를 운용해 사업 시행 전, 시행 중, 시행 후 전 주기에 걸쳐 철저하게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다.
물론 경제성 관점에서 낮게 평가되는 사업이라 할지라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및 지역균형발전 차원 등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예타조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면제제도가 있다. 그러나 예타제도는 원칙적으로 포퓰리즘을 방지하고 실효성 및 사업성 없는 정책들을 선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객관적 검증 절차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검증 절차는 정책 결정자에게 적어도 두 가지 관점에서 필요하다. 첫째, 민주적 절차에 부합한 의사결정을 유도함으로써 이해당사자 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공항 입지 선정을 놓고 지역 간의 심각한 대립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의사결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예타제도는 이러한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데 주요한 절차적 수단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 둘째, 예타제도는 국가예산의 낭비를 방지하고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재정 건전성의 악화를 막는 데 기여한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는 수조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대한 재정지원은 결국 온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게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막대한 재정지출이 소요됨에 따라 국가부채는 급증해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동남권 신공항 이슈는 자칫 국론 분열로 확대될 수 있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급할수록 예비타당성 조사부터 다시 시작하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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