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초유의 총장 직무배제를 하려면 그에 걸맞는 이유와 근거, 정당성과 명분이 있어야 할텐데 직무배제 사유 어디에도 그런 문구를 발견할 수 없다”
현직 검사인 김수현(사법연수원 30기) 제주지방검찰청 인권감독관이 이날 오전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불법, 부당한 총장 직무배제에 단연코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전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 직무 배제 조치에 대해 비판했다.
"홍석현이 사건관계인? 법령 확대 해석"
김 인권감독관은 “너무도 황당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니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글을 시작했다. 그는 첫 번째 징계 청구 혐의인 ‘중앙일보 사주와의 부적절한 만남’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여기서 사건이라는 것이 JTBC의 태블릿 PC 관련 고소사건인 모양인데, 그렇다면 JTBC가 피해자이고 JTBC의 대표는 손석희 사장이므로 대주주에 불과한 홍석현씨가 ‘사실상 사주’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대표하여 사건관계인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법령을 해석할 때 무작정 확대 해석하면 안된다는 것은 법률을 공부하는 새내기 때 배우는 것인데 다들 공부한 지 오래되셔서 그걸 잊고 계신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또 “설혹 ‘사건관계인’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 잠시 동석한 것이고, 사건 관련 이야기는 나온 적도 없으며, 만남 이후에 규정에 따라 상급자에게 그 사실을 신고하였다면 사건관계인 접촉 금지에 관한 규정을 어긴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하여간 무조건 만나면 안된다고 우기면 직무배제 사유가 되는가 봅니다.”라고 했다. 전날 대검 측은 윤 총장이 중앙지검장 시절 홍씨를 만났을 때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만남 이후에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에게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김 인권감독관은 “우리나라에서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고 관계된 사람이라는데, 검사님들, 앞으로 아무도 만나지 맙시다”라고 덧붙였다.
"사유 어디를 봐도 불법사찰 내용 없어"
김 인권감독관은 ‘주요사건 재판부 판사들에 대한 불법사찰’ 사유 역시 무리하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그는 “이분들 참 프레임을 만들어 씌우고, 정치적인 전략을 짜는 데는 도가 트신 분들이라 잠깐 감탄을 하기도 했다”며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에 대해 판사님들 보시라고 끼어 넣은 모양인데 그런 얄팍한 전략이 법원에 통할지 모르겠다”고 운을 띄웠다.
그는 “통상의 용례로 ‘불법사찰’이란 특정인 또는 특정집단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활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사유 어디를 봐도 그런 내용은 없다”며 “용례를 확장해서 적용하는데도 창의성이 돋보인다”고 했다.
그는 야구경기를 비유로 들었다.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앞 둔 감독이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은 높은 쪽은 잘 안 잡아 주니 유념해야 한다. 이 심판은 선수 출신이 아니다. 큰 경기에 심판을 본 경험이 많지 않다“라고 말하며 선수들에게 잘 적응해서 대비하라고 당부한다. 그러자 이 사실을 안 KBO에서 감독과 구단이 심판을 사찰했다며 직무배제 시킨다.”
이어 그는 “특히 공판검사님들, 앞으로 인사이동 때 후임자에게 판사님들의 특성에 대해 일언반구도 뻥끗하지 마시기 당부드린다”며 “위험하다”고 했다.
"검찰 역사에 조종 울리는 듯해 우울·참담"
김 인권감독관은 다른 네 가지 사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나머지 사유도…얼토당토 않은 사유에 대해서 일일이 반박하고 있으려니 자괴감이 들어 못하겠다”며“ 검찰 역사에 조종(弔鐘)이 울리는 듯 하여 우울하고 참담한 하루”라고 말했다.
그는 글 마지막에 ‘추신’을 달아 “고마해라…많이 묵었다 아니가…”라는 대사를 인용하며 “갑자기 이런 영화대사가 떠오르는 것은 제가 영화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했다.
김 인권감독관은 조국 법무부 장관 시절인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을 맡은 바 있다. 그 전에는 윤 총장이 중앙지검장이던 시절 중앙지검 총무부장, 공공형사수사부장을 역임했다./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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