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춘양면 해발 700m 높이 산골짜기에 위치한 백두대간수목원은 올 1∼4월 사이 수목원을 찾은 방문객은 약 9,000명이었으나 지난 5월부터 9월 사이에는 이보다 5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한 약 4만8,000명이 찾았다.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새로운 관광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5월 선정한 ‘언택트 경북관광지 23선’에 포함되면서 입소문을 탔기 때문이다. 수도권을 비롯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리며 ‘숲콕’(숲+집콕)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26일 경북문화관광공사 등에 따르면 관광 트렌드가 언택트(비대면)로 전환되면서 과거 주목받지 못했던 소규모 명소 등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동네 어귀의 작은 숲과 산책코스, 호젓한 강둑길, 해안 산책로, 은행나무 군락지, 시골 돌담길·저수지·농로 등 무심코 지나쳤던 장소가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밀려드는 언택트 관광객 탓에 한적한 시골 농로가 주차난을 빚는가 하면 시골마을에 대형 카페가 들어서고 주차장·화장실 등 관광 편의시설이 확충되는 등 곳곳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언택트 경북관광지 23선은 경북 23개 시·군의 둘레길·숲·공원 등 관광객이 사회적 거리를 두면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선정됐다. 23선 발표 이후 ‘언택트 경북23’이란 단어가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인기검색어로 떠올랐고 해당 장소가 자연스럽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실제로 23선에 포함된 오봉산 자락에 위치한 경주 건천편백나무숲은 동네 사람들의 산책코스였으나 코로나 사태로 새로운 언택트 관광지로 부상했다. 이곳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가족단위 관광객과 피톤치드 산림욕을 즐기는 동호인들로 붐빈다. 또 신라 화랑이 호연지기를 길렀던 단석산, 사극 촬영지로 이름을 알린 오봉산 마당바위, 선덕여왕의 전설이 서린 여근곡 등 인근 명소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해당지역 읍사무소는 관광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내년도 주차장 신설 예산을 긴급 편성했다.
영덕 벌영리 메타세콰이어길 역시 23선 선정 이후 T맵을 통한 목적지 도착 건수가 300% 이상 증가하며 영덕의 새로운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영덕군은 메타세콰이어길 일원에 주차장과 간이매점 등을 설치하고 있다. 울진 후포 등기산공원은 올 4월까지 약 8만명이던 방문객이 5~9월 사이 약 18만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대구와 인접한 경산 반곡지는 단순 웨딩사진 촬영지에서 사계절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관광지로 변모했다. 특히 주말이면 주변 농로는 주차된 차량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인근에 오픈한 대형 카페는 대기 손님들의 줄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이외에도 의성 조문국사적지는 밀려드는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사적지 확장을 계획하고 있고, 중장년층이 많이 찾던 청송 주왕산은 인스타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청년이 찾는 ‘산스장’(산+헬스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경북문화관광공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여행패턴이 보고 즐기는 관광에서 휴식하는 여행으로, 해외여행에서 국내여행으로, 단체관광에서 개별관광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에서는 올 들어 송도·다대포 해수욕장과 기장 일대 방문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 부산 대표 관광지인 해운대와 광안리 해수욕장 일대를 넘어설 정도는 아니지만 언택트 관광지 선호 탓에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유명 관광지보다는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지만 사람이 몰리지 않아 접촉을 줄일 수 있는 장소를 선호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충청권에서는 국내 최장 402m 길이의 예당호 출렁다리와 음악분수가 언택트 관광객을 끌어모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우수 관광자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4월 개통한 예당호 출렁다리의 누적 방문객이 지난 달 29일 400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우수 관광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이 이어지고 있다.
김성조 경북문화관광공사 사장은 “경북의 언택트 관광지들이 지역 관광시장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며 “뉴노멀시대에 부합하는 경북형 관광상품을 적극 개발해 관광산업 재도약의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안동·부산·예산=손성락·조원진·박희윤기자 ss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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