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나를 만들었다는 가설은 이론적으로 옳지 않아요.’ 아이작 아지모프(1920~2002년)가 1950년 12월 2일 출간한 단편소설집 ‘아이, 로봇(I, Robot)’에 나오는 대사다. 화자(話者)는 큐티.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은 로봇이다. 이어지는 큐티의 대사. ‘두 사람은 임시 제품인 게 분명하지만 난 완성품이죠. 전기에너지를 직접 흡수해 100% 효율적으로 쓰죠. 의식은 항상 깨어 있고 극단적인 환경에도 견딜 수 있어요.’
큐티의 말대로 로봇의 능력은 인간을 초월한다. 특정 목적을 위해 제작된 산업용 로봇의 안전성과 정확도는 높은 생산 효율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아지모프가 70년 전 우려했던 부작용. 공상과학소설(SF)부터 역사와 정치, 경제, 성서 해설, 셰익스피어 연구와 유머집까지 섭렵했던 아지모프는 소설 ‘아이, 로봇’에 해답을 담았다. ‘로봇 3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1,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2,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 2법칙에 위배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사실 해답이 처음 활자화한 시기는 이보다 빠르다. 아지모프는 1942년 과학 잡지에 발표한 단편 ‘런어라운드’에서 이 원칙을 선보였다. 1950년 말 펴낸 ‘아이, 로봇’은 ‘런어라운드’를 포함한 단편소설 9편을 연작 형식으로 묶은 작품. 소설 ‘아이, 로봇’에서는 로봇 3원칙과 관련된 갈등이 깊어지다가 결국은 인간애와 로봇의 복종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아이, 로봇’은 2004년 개봉된 영화의 제목으로도 유명하다. 내용상 접점은 거의 없지만 영화 제목은 아지모프의 명성과 소설에서 따왔다.
‘아이, 로봇’은 단지 허구일 뿐일까. 산업용 로봇의 밀도가 세계 2위인 한국은 지난 2007년 세계 최초로 ‘로봇 윤리 헌장’을 발표해 이목을 끌었다. 유럽연합(EU) 의회는 지난 2017년 ‘로봇 시민법’을 논의한 적이 있다. 하나같이 아지모프가 제시한 로봇 3원칙의 연장선이다. 산업용 로봇 밀도 세계 1위인 싱가포르의 연구진은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고통을 느끼는 인공지능’을 개발했다는 논문을 실었다.
인간은 얼마나 나을까. 기계적으로 지역을 배정하고 시간 단축을 명령하는 폭압적 경영으로 택배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는 현실.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로봇에 고통 기능을 부여하기 전에 인간 자체의 고통 공감이 우선돼야 한다. 고통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반응이다. 소통과 공감으로 고통을 나누는 사회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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