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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브리그' 날이 추워지니 단장의 시간이 왔네요[2020 명작열전①]





“너의 모든 것 너의 모든 순간 너의 숨결 모든 것을 전부 넘어선 그 손에 꼭 담긴 우리만의 cue sign ready…”

다시 들어도 시작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 OST의 주인공, 2020년 예상치 못했던 첫 흥행작이자 야구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두고두고 기억될 SBS ‘스토브리그’의 해도 이제 저물고, 연기대상만을 남겨두고 있다.

고작 준우승 경험 한번의 만년 꼴찌팀.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재송그룹이 운영하는 야구단 ‘재송 드림즈’는 모기업에게는 돈 먹는 하마다. 주요 사업영역을 전환하려는 재송 그룹에게 야구단은 이제 골칫덩이일 뿐. 그래서일까 이들이 구단의 마지막 단장으로 선택한 이는 ‘우승 뒤 해체’ 전문가 백승수(남궁민)였다.

팀은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였다. 힘없는 감독, 파벌 싸움하는 코치, 선수 위의 선수로 군림하는 임동규(조한선), 비리범벅 스카우트팀, 매너리즘에 빠진 마케팅팀, 그리고 착하디 착한 운영팀장 이세영(박은빈). 그리고 구단주 조카에서 코리안 조커가 된 권경민(오정세)까지…. 파도 파도 물 한방울 나지 않는 우물 같았다.

당장 해체해버려도 무방할 팀, 그러나 겨울은 단장의 계절이었다. 백승수는 눈에 보이는 문제들부터 핀셋으로 쏙쏙 뽑아 가차없이 내던졌다. 팀 분위기를 망치는 간판스타 임동규를 국가대표 에이스 강두기(하도권)와 트레이드했고, 선수 선발 관련 꾸준히 뒷돈을 받아온 고세혁(이준혁) 스카우트 팀장을 해고했다.

턱없이 낮아진 연봉 총액으로 연봉협상을 끝냈고, 구장 밖에서 가장 필요했던 불펜투수와 포수를 영입했다. 환상적인 협상능력으로 다시 강두기를 데려오고, 임동규까지 데려오고, 권경민이 다시 보낸 강두기를 또 데려왔다. 한줄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그 어려운 일이 백승수의 입을 거치면 술술 풀려버렸다. 진짜 더럽게 재수없지만, 또 더럽게 일은 잘했다.



모두가 안일했고 안주했다. 발전 가능성이 없는 팀이라고 여겼는지 모른다. 그래서 처음엔 백승수의 선택을 믿지 않았다. 그런 일이 한번 두번 세번 계속될수록 ‘혹시나’라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유경택(김도현) 전력분석실장은 타인의 분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임미선(김수진) 마케팅팀장은 옛 실력을 한껏 발휘해 구멍난 항아리를 메웠다. 그리고 그제서야 선수들이 선수다운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팀은 그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길 수 없는 팀이었으나, 이기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차마 이기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만큼은 모두가 이기고 싶으니까, 진짜 이번만큼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모두의 눈빛은 완전히 달라졌다. 신나는 프런트, 으쌰으쌰 하는 선수들…. 이세영(박은빈) 운영팀장은 느꼈다. 뭔가 일을 낼 것 같다고.



단장의 계절인 겨울이 지나갈 무렵, 결국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한 채 팀은 다시 위기를 맞는다. 한 게임도 안했는데 나온 해체설에 또 흔들리는 드림즈…. 백승수는 그들을 지켜내기 위해 마지막 매각 협상에 나서고, 결국 처음으로 무언가를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팀이 한국시리즈에 올라 임동규의 통렬한 홈런으로 기선제압에 성공한 순간, 마치 드라마처럼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기 위해 활짝, 문을 열어젖힌다.



방영 전 일부 방송사에서 퇴짜를 맞은 것으로 알려진 ‘스토브리그’의 흥행은 사실 기적같은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행과 거리가 멀었던 스포츠드라마라는 소재, 드라마의 필수 요소인 러브라인의 생략, 생소한 스포츠구단의 프런트 이야기라는 점 등 성공보다 실패 요소들을 떠올리는게 빨랐다.

막상 시즌이 끝나자마자 열린 스토브리그에서 작품은 스포츠가 아닌 ‘오피스 드라마’에 가까운 흐름을 이어갔다. ‘미생’의 긴장감에 트레이드 성공에 따른 쾌감, 액션보다 액션같은 선수들의 운동장면 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극찬을 이끌어냈다. 5.5%(닐슨코리아/전국)로 출발한 시청률도 19.1%까지 껑충 뛰어오르며 2020년을 대표하는 흥행작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신화 작가는 이 작품이 입봉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그림을 요목조목 세밀한 터치로 덧입혔다. 작은 조연이라도 뚜렷한 개성을 입혀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시켰고, 이는 곧 백승수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1년여가 지난 아직까지도 극중 이름으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SBS 스토브리그 중계 예고에 임동규와 백승수가 등장하고, 한국시리즈 시구 시타까지 한 것은 덤이다.

드라마는 배경이 야구장일 뿐 일로 시작해 결국 일로 끝난다. 눈 뜨면 씻고 출근해 해 떨어지면 퇴근하는 우리네 삶이 특별해봐야 뭐가 특별하겠냐만, 함께하는 이들과 같은 목표를 갖고 함께하는 오늘이 즐겁다면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지 않을까. 설마 이런 회사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그런데 또 당신 회사가 되지 말란 법도 없지. 백승수는 말한다.

“글쎄요. 해봐야 알겠지만 뭐, 열심히 할 겁니다.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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