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건설한 수원 화성행궁은 현재까지도 성곽 및 주요 건축물들과 함께 오랜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풍경을 지키기 위해 화성 내 지역은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최대 4층 이하로 건축 높이가 제한된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화성과 함께 늙은 주택들이 동네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며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이 일대는 전통의 멋을 살리기 위해 지난 2013년 한옥 촉진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됐다. 수원 화성 ‘행리단길’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적 관점에서는 골목 깊숙한 곳에 2층 한옥 ‘호원재(護元齋)’가 자리 잡고 있다. 호원재가 주목받는 것은 ‘한옥의 정통성과 근대건축 결합’이라는 고민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전통과 현대의 결합…‘현대 한옥’을 고민하다>
현대 도시에서 한옥의 입지는 참으로 애매하다. 그토록 강조하는 조상의 지혜가 아무리 잘 녹아들어 있어도 옛 주거 양식이 최신 주거 기술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한옥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각종 규제와 건축 규정을 맞추면서 현대 주택 기술을 한옥에 접목한, 이른바 ‘퓨전 한옥’은 잘못 짓는 순간 한옥도 양옥도 아닌 애매한 건축물이 돼버리기 십상이다. 한옥은 전통과 현대 기술 사이에서 길을 잃은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건축물이 위치한 수원 팔달구 신풍동이라는 동네 또한 한옥의 입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화성행궁이라는 전통 공간에 둘러싸인 이곳은 한옥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지만 한옥으로 신축 가능한 낡은 건물들이 다수 자리 잡고 있다. 최대 1억 5,000만 원에 달하는 전국 최고 수준의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 내 한옥을 지으려는 시도는 그렇게 많지 않다. 2~3층짜리 건물들이 밀집한 도심 지역에서 열린 마당을 가진 ‘전통 한옥’을 짓는다는 것은 사실상 사생활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대지가 한정된 도심에서 ‘단층’ 건물 또한 그만큼의 공간을 포기하거나 비용을 지불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호원재는 한옥에 대한 건축가의 수많은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각종 건축 규정을 만족시키면서도 도시적 맥락에 적합하고 한옥의 특징 또한 살리는 것. 그러면서도 생활의 편의, 신축 및 유지·보수 비용 등 현실적 문제점까지 모두 고려 대상이었다.
애초 작품은 ‘단층 한옥’으로 계획됐다. 하지만 단층만으로는 요구되는 밀도와 기능을 담기 힘들었다. 대신 다락을 포함한 2층 한옥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한정된 규모에서 정해진 면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당 면적이 줄어든 ‘ㄱ’자형 평면으로 수정했다.
기존의 단층 한옥에서 수평적으로 변화되는 공간의 위계(사랑채→안채)를 2층 한옥에서는 수직적으로 배열했다. 1층은 사랑채, 2층은 안채의 성격을 부여했다. 이러한 방식은 고밀화된 도시에서 지상층을 상업·접객 등 공적 영역으로 확보하고 상부층을 업무·주거 등 사적 영역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한옥에 적용한 예다. 수직 방향으로 분절된 공간들은 외부에서부터 툇간을 따라 자연스럽게 ‘건축적 산책로’를 통해 연결된다.
협소한 필지에서 지나치게 커진 처마 공간의 면적 비율이 문제였다. 호원재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처마선 경계에 맞춘 테라스를 2층에 배치, 외부 공간을 확보했다. 또 기존 한옥과는 다르게 툇간을 서측 및 북측에 배치해 계단실 및 복도 공간으로 활용했다. 실내 천장 높이는 1층 2.7m, 2층 2.5m를 확보해 주거 이외의 다양한 기능을 한옥에 수용했다.
<다양한 신(新)공법 활용으로 ‘한옥’ 문제점 개선>
한옥은 기본적으로 △취약한 단열·방수 △과도한 지붕 하중 △목구조 변형과 갈라짐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호원재는 이 같은 기존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일반 건축물 이상의 건축적 성능을 갖추도록 끌어올리는 것을 핵심 목표로 설정했다.
우선 전통적 목구조 방식은 수직적으로 적층된 호원재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한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호원재의 주요 구조부에는 공장에서 제작된 ‘프리컷 글루램(집성목)’이 사용됐다. 또 각 부위는 전통 목구조 결구에 철물로 보강했다. 특히 기둥은 바닥의 콘크리트 기초부터 다락 층 기둥까지 철물로 접합·일체화해 내진 성능까지 확보했다.
한옥의 목구조는 비에 취약하다. 빗물이 들이치면 비를 맞은 목재는 부풀었다 수축해 벽에 틈을 만든다. 그 벽은 물을 흡수해 곰팡이·결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건물에 2층과 다락이 더해지면서 처마가 보호할 수 있는 벽체의 영역은 줄었다. 이에 따라 외벽을 보호하는 방안을 추가로 마련해야 했다.
건축가는 보호 방안을 수원화성의 공심돈·포루 등에서 보이는 의장 요소에서 착안했다. 목조 외부에 전벽돌을 둘러 쌓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빗물이 들이치는 문제와 2층 테라스의 난간 기능도 해결했다. 외벽 자체의 방수 성능 또한 향상시켰다. 전통의 회벽 대신 내수성 및 표면 경도가 강화된 백색 스투코와 방수 시트를 사용했다. 또 수평 부재의 상부에는 스테인리스강 물 끊기를 설치했다. 1층 외부 구조체에는 건식 방부 처리를 해 오랜 시간 습기에 노출돼도 썩지 않도록 대비했다.
1층과 2층 사이에는 눈썹지붕 대신 캔틸레버 구조로 돌출된 테라스를 설치했다. 여기에 스테인리스강 물 끊기와 방수 시트를 연결해 벽체로 물이 스미는 것을 방지하고 테라스 끝단으로 물이 빠지도록 했다. 이를 통해 테라스는 처마의 기능을 겸하게 됐다. 난간은 전통 한옥의 평난간 디자인을 변형해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1.2m 높이를 확보했다.
일반 건축물보다 얇은 벽 두께로 인한 단열 성능 저하 문제는 경질 난연 우레탄폼으로 해결했다. 지붕의 경우도 개판과 기와 사이에 덧서까래를 두고 보토 대신 우레탄폼으로 단열했으며 바닥은 압출법 보온판을 사용했다.
이 같은 다양한 시도와 기술을 적용한 것을 인정받아 호원재는 ‘한옥의 현대화’를 주제로 한 2017년 ‘대한민국 한옥공모전’ 준공 부문에서 ‘올해의 한옥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성우 연세대 명예교수는 “정통적인 구법과 형식으로 지은 한옥이 아니라 재료·평면·기능 등 모든 요소가 건축가의 의도에 따라 현대적으로 구성된 한옥”이라며 “작은 집이지만 ‘한옥’으로서보다 ‘현대 한옥’으로서의 독창성과 가능성이 높이 평가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권혁준기자 awlkwon@sedaily.com 사진 제공=황효철 사진작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