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승인한 것을 두고 비상한 보건 위기에 신속히 대처했다는 평가와 동시에 비판론도 거세게 나왔다.
백신 승인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평가에서부터 지구촌의 노력을 자기 공로로 돌리는 ‘값싼’ 애국주의라거나, 유럽 연대를 해칠 우려스러운 돌출행동이라는 게 비판자들의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영국 보건당국이 지난 2일(현지시간) 화이자-바이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을 승인하자 유럽의 전반적 의견은 회의적이었다.
WP는 영국의 승인 때문에 유럽연합(EU)이 신속히 백신을 승인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박을 받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으나 그런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비상국면에서 EU의 규제 메커니즘이 가장 적합하다”며 속도보다 안전을 강조했다.
EMA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품질, 안전성, 효과를 심사해 29일까지 긴급사용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U에선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효력이 아직 발생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영국이 독자행동에 나선 데 대한 우려도 나왔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단행했으나 올해 말까지 그 효력이 유예되는 전환 기간을 보내고 있어 아직 EU 법규가 적용된다.
유럽의회에서 중도우파 정당들의 보건 대변인인 페터 리제(독일) 의원은 영국처럼 단독조치를 취하지 말라고 회원국에 당부했다. 리제 의원은 “문제가 있는 결정”이라며 “EMA가 몇 주에 걸쳐 철저하게 심사하는 게 서둘러 승인하는 것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옌스 슈판 독일 보건부 장관은 면밀한 심사는 백신 승인의 신뢰를 높이는 제도라며 이는 백신 개발에서 중요한 일부라고 강조했다.
영국을 둘로 가른 브렉시트를 주도한 영국 보수당 정권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백신 승인을 서둘렀다는 지적도 관측된다. 보수당의 브렉시트 명분이 EU로부터 사법권 독립, 목표가 세계 일류 국가로 복귀인 만큼 EU 법규 묵살에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알록 샤마 영국 기업에너지부 장관은 “영국이 코로나19를 향한 인류의 진격을 이끌고 있다”고 세계에서 가장 이르게 백신을 승인한 의미를 자평했다.
영국 우파매체 텔레그래프는 “민첩한 영국이 달아나는 동안 유럽은 관료의 요식체계 때문에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어 “관료주의와 법적절차의 타성 때문에 바이러스가 유럽 대륙에 타격을 극대화할 마지막 기회를 얻을 것”이라며 “몇 주 차질이 이어지는 동안 이미 곤란해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 예외주의나 제국주의 향수마저 연상시키는 이 같은 시각을 두고 다른 유럽에서는 낯 뜨겁다는 평가마저 뒤따랐다. 안드레아스 미카엘리스 영국 주재 독일 대사는 “중요한 진일보를 훌륭한 국제적 노력과 성공으로 인정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마카엘리스 대사는 “이건 진짜 특정국의 얘기가 아니다”며 “독일 제약업체인 바이오엔테크가 핵심적 기여를 했지만 이번 결과는 유럽국가간의, 유럽과 미국의 대서양을 넘나드는 간의 공조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는 각각 미국, 독일 제업약체다. 게다가 개발에는 영국이 브렉시트로 차단하려고 한 이민자 출신이 크게 기여했다.
백신 개발은 지난 여름 EU의 집단적인 사전 공동구매 덕분에 탄력을 받았다. 영국은 독자 행보를 강조하며 거기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한발 물러섰다. 존슨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구촌 노력의 결과”라며 “전세계 과학자가 함께 모여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앞서 영국 내각에서는 백신 승인이 브렉시트의 이득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웅배 인턴기자 sedati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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