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들이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주요 재판부 분석 문건’이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을 연이어 내놓았다. 대검이 사건 담당 재판부 구성원의 정보를 수집한 것은 위법이며, 법원이 이를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장창국 제주지법 부장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올린 글을 통해 재판부 분석 문건을 작성한 검찰을 질타했다. 해당 글에서 장 부장판사는 “유독 특수 공안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되면 언론사에서 ‘판사가 모 연구회 출신인데 전에도 유사한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해 물의를 일으켰네’ 등 기사를 낸다”며 “검찰이 그러한 정보를 언론사에 제공해서 (기사가) 나온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를 “검찰의 법원 길들이기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장 부장판사는 글을 읽는 판사들을 향해 “문건 작성 검사에게 신상 정보를 스스로 말하거나 신상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동의하신 분이 계시냐”고 물으며 “동의가 없었다면 검찰이 몰래 정보를 수집한 것, 즉 뒷조사”라고 검찰을 비판하기도 했다.
또 그는 글을 통해 “사건을 객관적으로 봐야 할 의무가 있는 검사가 오직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러한 문건 작성을 지시하고 회람을 하냐”면서 “판사는 인격이 없는 것이냐”고 말했다. 이어 “자기들이 직접 수사한 사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죄 판결을 받아내겠다는 태도가 공정한 검사의 태도냐”고 덧붙였다.
장 부장판사는 글 말미에서 “법원이 이것을 묵인하면 다른 국가기관도 판사의 개인정보를 모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전국법관대표회의 안건으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장 부장판사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소속돼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2017년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구성됐으며, 각급 법원에서 선발된 판사 110여명으로 이뤄져 있다. 회의 규정상 회의 개최 일주일 전 5명 이상이 제안하면 안건으로 등록될 수 있고, 회의 당일에는 10명 이상이 제안할 경우 안건으로 논의가 가능하다. 다음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오는 7일 온라인으로 열릴 예정이다.
송경근 청주지법 부장판사도 전날 코트넷에 글을 올려 재판부 사찰 의혹에 대해 논의해달라고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요구했다. 송 부장판사는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 침해 우려 표명 및 객관적이고 철저한 조사 촉구’라는 원칙적인 의견 표명을 해줄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고 적었다.
송 부장판사는 판사들이 이번 사건에 관해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한민국 법관과 재판의 독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제기해야지 누가 제기하냐”고 했다.
이어 그는 “법관은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을 해야 할 기관이니 안건으로도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는 수긍할 수 없다”면서 “평범한 법관의 입장에서 유불리를 떠나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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