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가 ‘벚꽃을 보는 모임’ 관련 의혹으로 검찰 소환에 직면하면서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아베 전 총리와 거리 두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궤양성 대장염을 이유로 사임했던 아베 전 총리가 최근 정치적 활동을 재개하면서 이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검찰 수사가 확대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아베 전 총리가 수사 결과 처벌 받을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정치적 입지는 크게 좁아질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지지자 등에게 향응을 제공했다는 의혹으로 조만간 검찰 조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전 총리 측은 ‘벚꽃 모임 전야제’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아베 전 총리의 진술을 요청한 것에 응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3일 전했다.
앞서 일본 언론들은 아베 전 총리 지역구 주민 등이 참가한 전야제 비용의 일부를 아베 전 총리 측에서 대납했다는 의혹과 관련 도쿄지검 특수부가 아베 전 총리에게 ‘임의 사정청취’를 요청했다고 전날 보도했다. 아베 전 총리는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검찰이 아베 전 총리를 향해 수사를 확대하는 데엔 스가 총리의 의중이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왔다. 스가 총리가 지난 9월 아베 전 총리의 도움을 받아 그의 후임으로 올라섰지만 이젠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가 총리는 아베 전 총리 재임 8년 간 관방장관으로서 총리 비서실장 역할을 맡아온 만큼 검찰의 관련 수사는 본인에게도 부담이 될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9월 궤양성 대장염을 이유로 사임한 이후 최근 들어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다.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을 추모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두 차례 참배했고, 지난달에는 일본 집권 자민당 의원들로 구성된 ‘포스트 코로나 경제 정책을 생각하는 의원 연맹’ 회장에 취임했다. 이를 두고 아베 전 총리 주변에서는 벌써 총리로 3번째 등판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최근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는 스가 총리가 국면 전환용 카드로 벚꽃을 보는 모임 관련 수사에 불을 지폈을 수 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지난달 30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TV도쿄가 지난 27∼29일 전국의 18세 이상 유권자 993명(유효답변 기준)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가 내각 지지율은 58%를 기록해 직전 조사와 비교해 5%포인트 낮아졌다. 스가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 비율은 32%로 6%포인트 뛰었다. 지지하지 않는 사람 중에는 ‘지도력이 없다’는 답변이 직전 조사 때와 비교해 25%포인트 늘어 37%를 기록했다. 지지율 하락은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증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스가 내각의 코로나19 대응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 비율은 48%였다. 긍정 평가하는 답변 비율(44%)을 4%포인트 웃돌면서 지난달 조사 때와 비교해 부정 평가 비율이 13%포인트 급등했다. 스가 총리는 여행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코로나19 확산을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검찰의 직접 조사로 아베 전 총리의 정치적 영향력 약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정계에서 아베 씨의 영향력 저하는 불가피하고, 자민당 내 역학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아베 전 총리의 출신 파벌인 호소다파의 간부는 내년 중으로 여겨지는 아베 씨의 호소다파 복귀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전직 총리가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충격이 크다고 전했다. 한 각료 경험자는 “이전처럼 공식 무대에서 활동하는 어려워질 것”이라며 아베 전 총리에게 “ (총리직) 재등판을 말하는 사람도 없어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도 벚꽃모임 전야제 의혹과 관련 도쿄지검 특수부가 아베 전 총리의 공설 제1비서를 입건할 방침을 굳혔다면서 “자민당 내 아베 씨의 존재감 저하는 피할 수 없는 정세”라고 진단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