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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달았다 '이태원 클라쓰'와 함께라면 [2020 명작열전④]





전학 온 첫날, 교실 뒤에서 금발머리 녀석이 약한 친구 머리에 우유를 쏟으며 웃고 있다. 다른 친구들처럼 시선을 피하고 조용히 넘어갈 것인가, 박차고 일어날 것인가.

책상을 물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던 단 한번의 선택은 박새로이(박서준)를 너무 일찍 어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수없이 되풀이된 성공과 실패가 적나라하게 구분되는 어른들의 세계에 너무 빨리 도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강하게 만들었다.

종로 굴다리 포장마차부터 시작해 거대한 음식 프랜차이즈 ‘장가’를 만든 장대희(유재명) 회장은 박새로이에게 말했다. 아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면 용서해 주겠다고. 그때부터였다. 그가 소신과 이익 앞에서 계속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은.

안 미안했던 그는 사과 대신 퇴학을 택했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모두 잃었지만 소소하게 행복했다.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지만…. 갑작스레 아버지를 뺑소니로 잃게 된 박새로이는 가해자 장근원(안보현) 살인미수로 징역살이까지 하게 되고, 더이상 그에게 손을 내미는 이는 이들도 없었다.

감옥에서 생각했다. 장가에 복수할 방법은 장가의 성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라고. 단 대가 없는 소신을 지키면서. 돈을 모으기 위해 원양어선을 타고, 공장에서 일한 그는 끝내 목표한 대로 7년 만에 전 세계를 압축해놓은 듯한 이태원에 포차 단밤을 차린다.

종업원은 전직 조폭과 트랜스젠더. 요리도 서비스도 해본 적 없는 이들의 가게는 파리만 날리고, 욕심 때문에 받은 손님 덕분에 영업정지까지 받는다. 장근수(김동희)를 빼내기 위해 경찰서에 나타난 장근원, 그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기라는 조이서(김다미)에게 박새로이는 말한다.

“지금 한번, 지금만 한번, 마지막으로 한번, 또 또 한번. 순간은 편하겠지, 그 한번들로 사람은 변하는거야.” 이 말을 들은 조이서는 결심한다. 이 남자의 성공을 돕겠다고. 그리고 이 남자를 내것으로 만들겠다고.



장대희는 죽을 때까지 포차가 자신을 이기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장사는 곧 이익을 얻기 위함임을 역설한다. 건물을 빼앗고, 식재료를 빼돌리려 하고, 비열한 수를 앞세워 싹을 잘라내려 한다. 소신과 패기는 없는 것들이 자존심을 지키자고 쓰는 말일 뿐. 그에게는 이득이 없다면 그저 고집이고 객기일 뿐이다.

동료에서 적이 된 장근수는 아버지가 살아온 궤적을 그대로 따라 마현이(이주영)가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며 못된 승부수를 던진다. 그리고 장가의 후계자를 자처했던 그 역시 형 장근원 일당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닥친다. 장가를 차지하기 위해, 박새로이에 대한 복수를 위해, 자신이 쌓아온 것을 지키고 경쟁자를 짓누르기 위해 장가 사람들은 계획적이고 비열하며 폭력적으로 끝을 보고자 한다.

“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는 없다”며 박새로이는 마현이를 다독인다. 자유롭고,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내 삶의 주체. 소신에 대가가 따르지 않는 삶. 박새로이가 추구하는 삶의 원칙은 전과자, 트랜스젠더, 혼혈, 고아는 물론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끝까지 폭력을 놓지 못하는 장근원을 크게 한방 먹이며 그와 식구들을 향했던 모든 칼끝을 뭉뚱그려버린다.



아들을 잃고 회사까지 박새로이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한 장대희는 엎드려 빌며 용서해달라고 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는 한손으로 머리를 쥔 채 잠시 고민하다 이 말을 던진다. “제가 호구로 보이십니까. 저는 장사꾼입니다. 기업인수 일에 다 잃고 한 사과가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비즈니스하세요 회장님.”



절정의 인기 웹툰이 원작인 ‘이태원 클라쓰’는 이미 결말이 난 작품이었던 만큼 선명한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주목받았다. 원작 작가 조광진이 드라마의 극본까지 맡으며 작은 우려를 사기도 했으나, 팬들의 큰 기대만큼이나 빠르고 통쾌한 전개로 초반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박새로이의 ‘굽히지 않는 소신’과 장대희와 장가 사람들의 ‘이익’이 충돌하는 가치 대립을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큰 호평이 이어졌다. 이들의 갈등은 신구 세대의 대립을 비롯해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람들간의 대립과 비교되면서 박새로이의 승리를 응원하게 만들었다.

물론 중반부 연결고리가 약한 탓에 잠시 시청률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겹겹이 쌓여 부수기만 기다리고 있는 ‘권선징악’의 끝을 보기 위해, 굽히지 않는 소신이 이익을 앞세우는 자를 무릎 꿇리는 장면을 보기 위해 시청자들은 다시 몰려들었다.

박새로이의 소신 앞에 무릎을 꿇은 장대희의 패배는 힘으로 사람들을 억누르던 자의 패배요 자본의 계급화에 대한 사과였다. 또 가족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다는 초심을 잃은 것에 대한 후회였다. 잠깐, 그건 당신에게만…누굴 호구로 알고··.

온갖 업무, 회식, 교육, 때로는 갈굼까지. 하루하루 품에 든 사직서를 꺼내 던져버리고 싶지만, 잘 품고만 있어야 하는 삶. 내일이 다시 월요일이라는 일상의 스트레스 속에서 박새로이의 “제가 호구인 줄 아십니까” 한마디는 회식 자리에서 먹고 아직까지 속에 걸려있는 듯한 삼겹살 묵은 기름까지 쫙 빠져나가는 듯 속이 다 시원했다.

박새로이는 말한다. “제가 원하는건 자유입니다. 누구도 저와 제 사람들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제 말과 행동에 힘이 실리고, 어떠한 부당함도 누군가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제 삶의 주체가 저인 것에 당연한 소신에 대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모두가 똑같지 않을까.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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