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단과 철자 교육, 경품 대회, 교회 자선행사라는 공통점을 지닌 게임이 있다. 힌트는 시기와 장소. 15세기 아라비아와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19세기 독일에서는 교육용으로 널리 쓰였다. 20세기 들어 대공황을 맞은 미국에서 상업 제품으로 퍼졌다. 무엇일까. 답은 빙고(Bingo)다. 뉴스위크지의 과학담당 편집자 출신인 찰스 패너티의 ‘문화 상품의 역사’에 따르면 독일인들이 로또라고 부르던 이 게임은 미국 남부에서 ‘비노(Beano)’라는 이름으로 번졌다.
민간 풍속으로만 전해지던 비노 게임을 상품화한 인물은 에드윈 로우(Edwin Lowe·당시 19세). 폴란드에 거주하는 유대인 랍비의 아들로 태어나 팔레스타인에서 교육받다 18세에 미국으로 건너온 신출내기였다. 장난감 외판원으로 일하던 그는 1929년 12월 9일 애틀랜타 지역을 이동하다 목격한 노변 축제 게임에서 사업 영감을 얻었다. 게임 방식은 오늘날 빙고와 똑같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사람들은 새벽 3시까지 게임을 즐겼다. 게임에 이겨 인형을 타게 된 소녀의 ‘비노(Beano)’라는 외침을 로우는 ‘빙고’로 들었다.
로우는 빙고 카드를 12장과 24장 세트로 만들어 1달러와 2달러씩에 팔았다. 마침 대공황이 직격탄을 날린 상황. 교회에서도 기금을 조성하는 데 빙고 카드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불황으로 헌금이 줄어들고 나빠진 재정여건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콜럼비아 대학 수학교수 칼 레플러의 자문을 얻어 승자가 겹치지 않는 6,000종의 빙고 카드를 제작해 전국에 뿌렸다. 로우의 빙고 카드는 불황기 오락으로 자리 잡고 각국으로 퍼졌다.
카드로 조합을 만들어 승부를 결정하는 얏찌(Yahtzee) 게임을 대중화한 장본인도 에드윈 로우다. 젊은 시절 거액을 벌어들인 그는 평범한 것을 남들과 달리 생각해 사업화에 성공한 상징으로도 손꼽힌다. 게임 때문에 실패한 적도 있다. 1962년 네바다 라스베이거스에 객실 450실 규모의 특급 호텔을 1,200만 달러 들여 개장했으나 영업 부진에 시달리다. 1년 뒤 700만 달러에 매각하고 말았다.
실패 요인은 카지노의 부재. 로우는 라스베이거스에서도 게임을 싫어하는 계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카지노가 없는 호텔을 만들었으나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부침을 겪었어도 그는 행복한 편이다. 영화 제작에 나설 만큼 돈도 벌었다. 그가 대중화시킨 빙고 게임의 생명력도 여전하다. 빙고 게임의 수많은 변형이 시간을 자양분 삼아 휴대폰 속에서 퍼지고 있으니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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