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과 ‘기업 규제 3법’ 강행 처리 수순에 돌입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174석의 의석수를 기반으로 밀어붙이는 여당에 맞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로 대응할 예정이다. 또 국회 보이콧을 포함한 장외투쟁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 안팎에서는 거대 여당의 입법 독재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원회 회의에서 공수처장 임명 시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과 기업 규제 3법 가운데 하나인 상법 개정안의 단독 의결을 시도했다. 앞서 여야 원내 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검토한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여야 원내 대표 간 약속은 20분 만에 폐기됐다.
여당의 단독 의결 시도는 국민의힘이 두 법안의 안건조정위원회 회부를 요청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자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을 야당 몫 조정위원으로 지명해 안건 조정 제도 취지 자체를 무력화시켰다. 민주당은 8일 안건조정위를 열어 범여권 의원 4명의 찬성으로 의결한 뒤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이들 법안을 또다시 의결해 본회의에 올릴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민주당의 강행 처리에 사실상 힘을 실었다. 문 대통령은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권력기관의 제도적 개혁을 완성할 기회를 맞이했다”면서 “우리 정부는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그 과제를 다음 정부로 미루지 않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민주당 소속 윤관석 정무위원장도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전체 회의에 직권 상정했다 . 다만 야당은 또다시 이들 법안에 안건조정위 회부를 요청하는 등 맞불을 놓았다. 한편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 대표는 이날 저녁에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필리버스터를 비롯한 모든 제도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합법적 수단으로 막아내지 못하면 장외투쟁도 불사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 與 ‘공수처장 합의 추천’ 약속 깨고 폭주...파국열차 타나 |
김태년 민주당 원내 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 대표는 이날 오전 “공수처장 후보 추천은 양당 원내 대표가 밀도 있게 협의하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김성원 국민의힘 원내 수석 부대표는 이날 오전 11시 40분께 “공수처와 관련해서는 (원내 대표 간) 법사위 소위에서 (이날) 논의하지 않기로 했다”고 여야 원내 대표 회동 결과를 공개했다.
그러나 이날 정오께 민주당 소속 법사위 위원들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에 대한 야당의 거부(비토)권을 무력화하는 법안에 대한 법안소위 의결을 시도했다. 여당 법사위가 20분 만에 이 합의를 어기면서 공수처를 둔 여야의 합의가 사실상 파기된 것이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쟁점 법안을 다시 조율하는 안건조정위원회 회부를 요구하면서 공수처법 의결은 무산됐다. 주 원내 대표는 이 같은 일이 벌어지자 법사위 회의장을 찾아 “이 마당에 협상이 뭐가 있느냐. 협상 내용도 못 지키지 않느냐”고 성토했다.
공수처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의 갈등은 정면충돌 양상으로 확대됐다. 여당은 야당이 요청한 안건조정위를 거쳐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날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8일 오전 9시와 9시 30분에 각각 공수처법과 상법에 대해 안건조정위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여당은 안건조정위에서도 수적 우위(민주당 3, 열린민주당 1)를 앞세워 조정을 끝내고 전체 회의에서 공수처법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공수처법 강행은 여당 내에서도 “밀리면 ‘레임덕(정권 말 권력 누수 현상)’”이라는 목소리가 커진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에 더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둔 검찰 수사의 칼날이 청와대 정책실까지 향하는데다 민주당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이날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국정원·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의 권한을 분산하고 국민의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개혁 입법이 반드시 통과되고 공수처가 출범하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면서 공수처 국면에서 여당의 퇴로는 사라진 상황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이날 “제가 책임지고 권력기관 개혁을 입법화하겠다”고 당내 의원들을 상대로 입법 처리를 거듭 강조했다.
야당은 긴급 의원총회를 통해 ‘총력 투쟁’을 예고했다. 법의 범위 내에서 모든 투쟁 수단을 동원해 공수처법 개정을 막겠다는 전략이다. 주 원내 대표는 이날 의총 직후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만드는 절차, 법의 부당성을 최대한 국민들에게 알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서 저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도 의총 직후 “문 대통령이 (공수처 출범 주문 등) 개전 신호를 내리면서 전쟁은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수처법 개정안이 논의되는 법사위 회의장에서의 농성과 9일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 농성에 이어 본회의에서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로 공수처법 저지 투쟁에 나설 방침이다.
당내에서는 김종인 비대위 출범 이후 자제해왔던 장외투쟁 카드도 검토하고 나섰다. 원내 투쟁이 공수처법 처리를 막을 수 없어서다. 필리버스터는 국회법상 재적 의원 5분의 3(300석 중 180석) 이상이 찬성하면 중지된다. 현재 열린민주당과 정의당·무소속 의원 등 범여권의 의석수는 180석을 넘어선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화 세력이라는 여당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했다”며 “국민들이 단합해서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민의힘은 공수처 검사 지위와 검경 고위 공직자 수사의 공수처 강제 이첩 조항 등이 위헌이라는 점을 들어 헌법 소원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지훈·구경우·김혜린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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