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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시대 변했는데 낡은 습속 고집하는 보수, DNA 바꿔야"

신간 '보수를 말하다'서 쓴소리 쏟아내

"툭하면 상대에 '좌빨'이란 낙인 찍기"

"아직도 공포 정치하던 주류라 착각"

"아스팔트 극우 대신 젊은 보수 찾고"

"중도층도 수용 가능한 메시지 내야"

"공정과 정의, 공동선 가치 되살려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이호재 기자




“극우 반공주의와 시장 만능주의. 대한민국 보수를 지탱해온 두 기둥은 무너졌다. 보수 진영은 대한민국이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이행한 것의 정치적 의미를 알지 못한다”

최근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천년의상상 펴냄)’를 통해 현 정권과 진보 세력을 강하게 비판했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이번에는 ‘보수를 말하다(동아일보사 펴냄)’를 내고 한국 보수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치는 동시에 ‘외부자’의 시각에서 보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진 전 교수는 책 서문에서 “문재인 정권 폭주의 가장 큰 원인은 이를 견제해야 할 제1야당이 제 역할을 못하는 데 있다”며 “보수는 여전히 저만의 좁은 세계에 갇혀 자기들의 모습이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다수이자 주류이던 시절 가졌던 낡은 습속을 고집하다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돼 버렸다”며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라며 “그럴 때는 타인의 눈을 빌리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진 전 교수는 자신은 ‘타자’ 또는 ‘외부자’라는 전제를 명확히 깔고 “아무리 여당이 폭주해도, 그 지지가 야당으로 향하지 않는” 이유를 보수 내부에서 찾아 조목조목 분석했다.

먼저 그는 한국 보수의 ‘좌빨(좌익빨갱이)’ 낙인찍기를 문제 삼았다. 진 전 교수는 대한민국 정치 지형 안에 유의미한 ‘좌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은 독일 보수당인 기민당보다 보수적이고, 정의당 정책도 독일 사민당에 비하면 한참 오른쪽”이라며 “상대를 ‘좌빨’이라 규정하는 건 이성적 판단이라 할 수 없고 비난 혹은 선동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또 진 전 교수는 “정권 내 586 세력이 주사파였던 것은 젊은 시절 잠깐”이라며 “그 후로 그들은 이념과 상관없이 살아오다 지금은 권력욕과 재물욕만 남은 평범한 정치인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들을 ‘좌빨’로 몰아세우는 건 어불성설이어서 결국 비이성적 선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진 전 교수는 보수의 ‘베네수엘라 타령’도 지적했다. 그는 “결국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놓고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라는 얘기”라며 “설령 보수가 정권을 잡는다 해도 할 일이 없고, 정책을 창안해낼 필요도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보수의 또 다른 문제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조롱’ ‘공감 능력 결여’ 등을 꼽았다. 그는 “보수는 왜 툭하면 ‘막말’을 하나? 간단하다. 막말을 막말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당이 버린 피해자를 야당이 품으려면 피해자에게 이입해 그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저 정치적 호재로만 본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법 개정안 강행처리에 항의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7일 오후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가 열리고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연좌하고 있다./연합뉴스


진 전 교수는 문제점 지적과 함께 국민 지지를 받고 싶다면 보수로서의 품격과 태도를 갖추고, 지향하는 가치를 명확히 하며, 젊은 보수를 키워야 한다는 제언도 내놓았다.

그는 공정과 정의, 공공선의 공화주의적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 전 교수는 “공화국은 무엇보다 공공선을 위한 국가”라며 “공화주의는 원래 보수의 이념인데, 보수는 공화주의를 외면해왔다”고 비판했다. 수호 가치에 대해서는 ‘고루하다’할 정도로 원칙을 고수하지만 시대 정신을 위해서는 유연해지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DNA 교체를 위해 아스팔트 극우 대신 합리적인 젊은 보수와 손잡으라는 조언도 전했다. 그는 “희망은 젊은 층에 있다”며 “젊은이들을 ‘키즈’로 만들어 마스코트 삼을 생각을 해선 안된다. ‘어른’으로 키워 당에서 어른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진 전 교수는 “새는 두 날개로 난다. 한쪽 날개가 잘린 새는 날지 못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라는 말로써 진보에 이어 보수를 향한 글도 길게 쓴 이유를 밝히며 책을 마무리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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