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도 한눈만 팔고 게으름 피우는 소는 싫어하실 거야. 우린 가끔 회초리로 두들겨 맞아야 해”
말은 이렇게 했지만, 할머니 소는 왠지 콧등이 째금째금 더워졌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회초리로 맞아 온 엉덩이는 살가죽이 굳어 버려 아무렇지 않았지만, 가슴속이 따갑도록 서러웠습니다.(권정생 ‘들국화 고갯길’ 중에서)
생전 작지만 순수하고 착한 존재를 다정한 시선으로 어루만지는 글을 썼던 권정생 작가의 단편동화 ‘들국화 고갯길’이 일러스트레이터 이지연의 그림과 한 데 묶여 출판사 창비를 통해 따뜻한 색감의 그림책으로 출간됐다.
이번 책은 ‘권정생 문학 그림책’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으로, 1978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발표됐던 동명의 동화를 새롭게 해석했다. 1970년대 후반 한국 농촌을 배경으로, 묵묵히 노동 현장으로 향하는 할머니 소와 꼬마 황소의 이야기를 담았다. 무거운 짐을 지고 고갯길을 넘다 주인들이 휘두르는 회초리에 맞기도 하지만 ‘하느님이 내려 주신 성스러운 일’이라고 여기는 할머니 소의 모습에서, 때로는 한눈 팔고 싶다고 고백하는 꼬마 황소의 작은 한숨에서 노동하는 삶의 애환이 느껴진다. 힘들지만 그래도 전쟁터보다는 들녘에서 일하는 삶이 낫다는 할머니 소의 말에는 작가의 평화 메시지도 담겨 있다.
권정생은 2007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강아지똥’ ‘몽실언니’ ‘바닷가 아이들’ 등 평생 어린이들의 평화와 안녕을 바라는 글을 썼고, 인세를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동화책 속 농촌 들녘의 서정적 풍경은 볼로냐 국제아동 도서전에서 두 차례나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던이지연이 그렸다. 워낭을 목에 달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들과 들국화가 피어난 늦가을 정취가 그림 속에서 잘 어우러진다. 초등 전학년 대상. 1만5,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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