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오전 11시 국회 법사위 회의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제사법위원장이 “이 법안에 찬성하시는 의원님들은 기립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여당 소속 법사위원 11명과 비례 정당인 열린민주당의 최강욱 의원이 기립했다. 윤 위원장이 찬성 의결(18명 중 12명)로 오른손에 잡은 의사봉을 두드리려 하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 대표가 팔을 잡아 의사봉이 책상에 떨어졌다. 윤 위원장은 “이거 왜 이러세요”라고 말한 뒤 왼손으로 의사봉을 잡아 책상에 세 번 내리쳤다. 이날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 후보 추천에 관여하지 못하게 공수처법을 개정해 9일 본회의로 보내는 데 소요된 시간은 7분에 불과했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모두 법사위 명패를 떼 윤 위원장에게 반납했다.
법사위원회가 이날 공수처법 개정안을 여당 일방의 안건조정위와 전체 회의를 통해 의결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과정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전날 법사위는 야당의 요청으로 공수처법 등 쟁점 법안을 다시 조율하는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했다. 하지만 최대 90일까지 논의를 이어갈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회법과 달리 여당은 이날 회의를 연 지 불과 1시간여 만에 안건 조정을 마무리했다. 이어 안건조정위가 끝난 지 30분 만에 윤 위원장이 전체 회의를 열고 공수처법을 상정했다. 이 과정에서 법사위 회의실 앞에서 대기하던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 “전체 다 들어와, 들어와”라는 고성이 터졌다. 당초 전체 회의 일정은 낙태죄와 관련한 법안에 대한 공청회였지만 윤 위원장이 안건을 변경해 공수처법을 기습적으로 올렸다. 농성을 벌이던 국민의힘 수십 명은 안으로 진입했고 회의장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뒤엉켰다. 주 원내 대표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이 이게 말이 되느냐”며 “자기(민주당)들이 법을 만들어놓고 아직 조정이 안 됐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윤 위원장이 일방적인 의사 진행을 통해 법안을 처리했다.
이날 법사위 문턱을 넘은 개정안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 시 ‘추천위원 7명 중 6명 이상 찬성’ 기준을 ‘의결정족수의 3분의 2 이상’으로 완화하고 공수처 검사 자격 요건을 현행 변호사 10년에서 7년으로 낮추는 김용민 의원의 안이다. 이 법이 9일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공수처장은 야당 추천위원(2명)이 반대해도 여당이 지명한 후보추천위원(2인)과 대한변협회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등 5인이 찬성하면 후보 2인을 추천할 수 있고 문재인 대통령이 최종 1인을 지명할 수 있게 된다. 본회의에서 여야가 공수처법 개정안 등을 처리할 경우 법안 마련과 심사, 상정, 안건조정, 법안통과 등 법안 심사와 의결을 위한 모든 과정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되는 전례 없는 상황이 기록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여당의 일방통행 식 입법 폭주에 반발하면서 울분을 토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공수(空輸)부대 작전같이 삼권분립을 유린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도 이날 법안 처리에 대해 “공산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폭거를 자행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사위원인 장제원 의원은 퇴장하며 “오늘부터 법사위는 없다. 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이 법을 마음대로 바꾸라”고 일갈했다. 법사위원인 조수진 의원은 회의장에서 퇴장한 뒤 “이런 정당이 민주라는 말을 쓰고 있다. 더불어독재당이고 유신정권과 똑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5선의 정진석 의원은 “여당이 그토록 타도하려고 한 독재 소리를 듣고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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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국회법에 따른 합법적 의사 진행이라고 항변했다. 백혜련 의원도 안건조정위가 끝난 뒤 “의결을 둔 다툼은 없었다”며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했다. 윤 위원장도 국회법에 따라 상임위 안건을 의결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이 아무리 발목 잡아도 공수처는 출범한다”며 “민주당은 민주주의로서 공수처를 반드시 출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법안이 법사위를 넘자 “개혁의 과업이라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럽지만 또한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기꺼이 그 일을 저는 하겠다”며 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국민의힘은 9일 본회의가 열리면 공수처법 등에 대해 전원위원회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등으로 응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전원위원회는 국회법 제63조에 따른 것으로 의원 전원이 참여해 법안을 심사할 수 있다. 대상은 정부조직법·조세 또는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법안에 대해 본회의 상정 전에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국회의장이 위원장을 지명해 구성할 수 있다. 필리버스터도 진행해 입법의 부당성을 알린다는 방침이다.
다만 전원위원회와 필리버스터가 법안 처리를 지연시킬 수 있지만 통과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 전원위원회는 국회의장이 위원장을 국회부의장으로 지명한다. 국회부의장은 민주당 소속 김상희 부의장 1인 뿐이다. 필리버스터도 본회의 회기가 끝나거나 재적의원 3분의 1이상 종결동의서에 찬성하면 24시간 후에 무기명투표가 진행되고 5분의 3(180명) 이상 찬성하면 종료된다. 민주당(174석)과 열린민주당(3석), 친여 무소속 의원(4석)은 181석이다. /구경우·김혜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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