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1년도 채 안돼 백신이 나온 것은 막대한 개발비 지원에 있었다는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영국 정부 최고과학보좌관인 패트릭 발란스 경은 지난 10월 국가안보전략위원회의에서 백신 개발에 보통 10년이 걸리고, 5년 내 개발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코로나19 백신이 초고속으로 개발이 가능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로 가디언은 막대한 개발비 지원을 꼽았다.
각국 정부가 백신 개발에 공공 재원을 쏟아부었을 뿐만 아니라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재단과 같은 민간 영역에서도 상당한 자금을 기부했다. 제약업체들은 자금 문제 우려를 제쳐두고 신속하게 백신 개발에 나설 수 있었다.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으로 상황이 긴박한데다, 백신 예비 수요가 높은 점도 백신 개발 속도가 빨랐던 이유라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의 스티븐 에번스 교수는 “정부의 백신 선(先)구매 조치가 개인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백신 접종을 하도록 유인했다”고 말했다.
중국 과학자들이 코로나19의 유전자 서열을 공유한 점과 이미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한 연구가 축적된 점도 도움을 줬다. 가디언은 기존 백신 개발 및 생산 플랫폼을 활용해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개발 및 생산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의 졸탄 키스 박사는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사용한 mRNA 백신 플랫폼 기술은 개발된 지 20년이 지났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또 기존 백신의 임상 시험이 순차적으로 진행된 반면,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중복으로 진행됐다고 분석했다. 기술 발전으로 데이터 작업도 효율화됐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백신 개발에 도움을 주려는 임상 시험 참가자들을 모집할 수 있는 점도 백신 개발 기간을 줄였다. 옥스퍼드대-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개발에 참여한 브리스톨대의 아담 핀 교수는 “(임상 시험) 참가자를 모집하는 데 통상 몇 주, 몇 개월이 걸리는데, 이번에는 하룻밤 사이에 모집됐다”고 말했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이 심사 기관의 사전 검토 작업인 ‘롤링 리뷰’(rolling review)를 거친 점도 백신 심사가 빠르게 이뤄진 배경으로 꼽혔다. 롤링 리뷰는 임상시험 자료가 완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망한 의약품이나 백신 승인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우선 제출된 자료를 살펴보는 작업이다. 에번스 교수는 “제약업체들은 승인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과 승인되지 않았을 경우의 위험성을 고려해 실험 데이터가 모두 모일 때까지 기다린다”면서 롤링 리뷰 방식이 이번에 새롭게 시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가 세계 최초로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백신 사용을 승인한 것과 관련해 브렉시트의 영향력을 놓고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렸다. 유럽연합(EU) 내부 규정에 개별 회원국의 약품 비상 사용을 허가하고 있기 때문에 영국 당국의 자체적인 백신 승인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브렉시트 이행 기간이 백신 승인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웅배 인턴기자 sedati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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