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작다’는 기준은 같은 나이·성별의 어린이 중 하위 3%에 드는 경우다. 아이가 사춘기 전인데 키가 연간 4㎝도 못 크거나 또래 평균보다 10㎝ 이상 작다면, 잘 자라다 갑자기 성장속도가 줄어들었다면 성장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보통 체성분검사로 신체상태를, X-레이 검사로 성장판 간격과 뼈 나이(성숙 정도)를, 채혈검사로 호르몬·영양상태를 확인한다. 키는 성장호르몬이 관절 부위인 뼈의 양쪽 끝부분에 붙은 성장판 세포를 자극·증식하면서 자란다. 성장판 간격이 벌어져 있으면 성장판이 열려 있어 성장 여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성장 단계는 급성장기(1~2세), 성장호르몬에 의한 성장기(3~12세), 성장호르몬+성호르몬에 의한 제2 급성장기(13~16세)로 나뉜다. 제2 급성장기에 남자는 25~30㎝, 여자는 20~25㎝ 성장하며 각각 16~17세, 14~15세에 성장이 종료된다.
만성 장질환, 천식, 알러지, 아토피 등이 적절히 치료되지 않으면 영양섭취나 숙면을 방해해 성장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성장호르몬 분비가 최고조에 이르는 밤 10시~새벽 2시에 숙면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
◇성장호르몬 치료, 성장판 충분히 남아 있어야
검사 결과 성장호르몬 결핍증, 터너증후군, 만성 신부전증이 있거나 저체중아로 태어났다면 성장호르몬 주사를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성장판이 닫힌 뒤에는 효과가 없으므로 사춘기 이전에 맞아야 한다. 서지영 노원을지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성장호르몬은 1년 이상 투여해야 효과를 볼 수 있으므로 성장판이 충분히 남아 있는지, 다른 건강상의 문제는 없는지 확인 후 투여해야 한다”며 “성장호르몬 분비에 장애가 있다면 만 4세 이후 시도해 가능하다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 또래와 키를 비슷하게 키워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다만 부작용으로 갑상선기능저하증, 관절통, 얼굴 부종, 혈당·혈압 상승, 엉덩관절(고관절) 탈구, 두통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갑상선 질환이나 당뇨병·백혈병·종양 발생이 많은 가족력이 있다면 맞지 않는 게 좋다.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균형잡힌 식생활과 운동. 과도한 영양섭취로 체중이 급증하면 골 성숙과 사춘기를 촉진해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충분한 성장을 위해서는 매일 30~60분 정도의 신체활동이 필요하다. 다리의 성장판을 적절히 자극하는 운동으로는 스트레칭, 달리기, 줄넘기, 댄스, 탁구, 농구, 수영, 배드민턴 등을 꼽을 수 있다.
◇성조숙증 아이, 처음에는 성장 빠르지만 성장판 일찍 닫혀
# 학부모 B씨는 초등학교 2학년 딸이 초경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부쩍 살이 찌고 가슴 발달도 너무 빠른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성호르몬·성장판 검사 결과 성조숙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성조숙증은 일반적으로 성호르몬에 일찍 노출돼 여자아이는 만 8세 이전에 유방 발달이 시작된 경우를, 남자아이는 만 9세 이전에 고환이 커지는 경우를 말한다. 여아는 여성호르몬 분비로 가슴 몽우리가 생기고 자궁이 커지면서 또래보다 일찍 초경을 겪는다. 남아는 남성호르몬 분비로 음경·음모가 발달하고 변성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머리기름이나 체취, 여드름, 액모(겨드랑이털) 등 사춘기 징후가 나타난다.
성조숙증이 있는 아이는 이같은 2차 성징이 빨리 와 처음에는 키의 성장이 빠르다. 그러나 방치할 경우 성장판이 일찍 닫혀 성인이 됐을 때 남들보다 키가 작을 확률이 크다. 빠른 신체 변화로 인해 정서적 불안감이 나타날 수도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성조숙증으로 건강보험 진료를 받은 소아청소년은 약 10만8,600명으로 2015년 약 7만6,000명보다 43% 증가했다. 저출산으로 소아청소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것과 딴판이다.
◇호르몬 조절 이상·종양 등으로 성호르몬 과다분비
나이보다 뼈 나이가 많으면 성조숙증을 의심할 수 있는데 특별한 원인을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과잉영양, 체지방량 증가, 환경호르몬, 내분비 교란물질 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성인이 됐을 때 예상 신장의 현저한 감소나 심리적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없다면 주기적인 경과관찰과 심리적 안정, 성적 발달에 대한 교육·준비로 충분하다.
성조숙증은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의 호르몬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긴 ‘중추성 성조숙증’과 난소·고환·부신에 낭종·종양 등이 생겨 성호르몬이 과다분비되는 ‘말초성 성조숙증’으로 나뉜다.
성조숙증 진단을 위해서는 비만도와 뼈 나이, 호르몬 농도 등을 측정한다. 만 6세 이하 아이가 성조숙증으로 진단되면 뇌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하고 성호르몬 분비 억제 약물을 4주 또는 12주마다 주사하는 ‘사춘기 지연치료’를 할 수 있다. 성장호르몬 분비가 억제될 수 있어 성장호르몬 투여를 병행하기도 한다. 조자향 강동경희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성조숙증을 치료하면 뼈 나이가 빨라지는 것을 조절해 키가 덜 크거나 정신적으로 어린 상태에서 사춘기가 진행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른 2차 성징이 있다고 모두 약물치료를 하지는 않는다. 김기은 강남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가슴 발달은 있으나 성조숙증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 성조숙증은 있으나 치료 시작 시기가 늦어 치료 효과가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비만 등 위험인자를 가진 경우도 있어 종합적으로 평가해 필요한 경우에만 치료를 결정한다”며 “남아는 신체적 변화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성조숙증이 의심되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진료를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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