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환상적이었다. 영화계는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쾌거에 영화 산업이 올해 또 한 번 크게 도약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장밋빛 꿈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코로나 19의 기습에 제작·배급·상영이 모두 엉망이 됐다. 촬영 현장과 상영관이 걸핏하면 폐쇄·재개를 반복했다. 악몽보다 더 끔찍한 한 해를 보낸 영화계는 ‘전년 대비 매출 63.6% 감소’라는 처참한 결산표를 받아 들었다.
■영화산업 매출 1조 하회…2006년 이후 최저
14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0년 한국영화산업 가결산’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한국 영화 산업 전체 매출은 9,132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해 2조5,093억 원 대비 63.6%가 줄어든 수치로, 200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영화 산업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극장 매출은 충격적인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1월 말 국내 첫 확진자 발생과 함께 고꾸라지기 시작해 4월엔 극장 매출이 75억 원까지 떨어졌다. 이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하 통전망) 집계 이후 최저다. 이후 8월 중순 코로나 2차 확산에 다시 발목이 잡혀, 지난 11월까지 누적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1.2% 감소한 4,980억 원으로 집계됐다. 영진위는 “마지막 12월 전망도 밝지 않다”며 “거리 두기 강화 등의 상황을 고려할 때 올해 총 극장 매출은 전년 대비 73.3% 감소한 5,103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코로나 19는 한국 영화의 해외 진출길도 가로막았다. 11월까지 완성작·기술서비스·장비 수출 및 로케이션 유치 등을 모두 합한 한국영화 해외 매출 추산액은 작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94억 원에 그쳤으며, ‘집콕’ 생활로 호조를 기대했던 TV VOD 시장 역시 넷플릭스 등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에 밀려 부진했다.
■코로나 불확실성에 무너진 영화 생태계
올해 영진위는 2차례에 걸쳐 코로나 19로 인한 영화계 피해 실태 조사를 벌였다. 조사에 응답한 135편 작품의 총 피해 규모는 329억 56만 원. 작품당 평균 피해액이 2억 4,747만 원인 셈이다. 제작 연기·변경으로 인한 피해액이 113억 4,270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개봉 연기로 인한 피해액도 97억 1,430만 원에 달했다. 국내 로케이션 취소나 변경, 후반 작업 기간 연장으로 인한 인건비·진행비 증가에 개봉 직전 취소 또는 연기까지 겹치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관객의 발길이 끊긴 극장가에서는 강력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올 10월 기준 영화관 정규직 재직자 수는 지난해 12월 대비 15.9% 감소했고, 계약직은 무려 70.2% 줄었다. 이런 가운데 CJ CGV, 롯데시네마 등은 이미 상영관 감축 계획을 밝힌 바 있어 고용 상황은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외화 공급 감소에 韓영화 점유율 60% 넘어서
코로나 19로 해외에서도 영화 제작·배급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 이에 외화 배급은 확 줄었고, 한국 영화 점유율이 14년 만에 60%를 넘어섰다. 연간 박스오피스 상위 10위에는 한국 영화가 8편이나 이름을 올렸다. 1위는 ‘남산의 부장들’, 2위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이 두 편만이 400만 관객을 넘겼다. 외화 중에선 ‘테넷’과 ‘닥터 두리틀’이 이름을 올렸으나 200만 관객도 유치하지 못했다.
신작 수혈이 안 되면서 독립·예술 영화가 상영관 개봉 기회를 잡는 새로운 현상도 나타났다. 11월까지 320편의 독립·예술영화가 개봉해 51만 4,814회 상영됐다. 이는 전년보다 23.8% 늘어난 수치다. 빈 상영관을 메우기 위한 재개봉도 크게 늘었다. 최근 4년 동안 재개봉 영화는 평균 87.5편이었으나 올해는 250편이 극장에 다시 등장했다.
영진위는 내년부터는 영화 산업이 다시 회복될 것이라면서도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영진위는 “올해 는 코로나 19 영향으로 인한 구조 재편과 극장에서 OTT로의 유통 플랫폼 변화가 가속화했다”며 “내년부터 글로벌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산업이 이전의 성장세를 되찾아가겠지만 2025년에는 SVOD(월정액 주문형 비디오) 시장 수익이 박스오피스 수익의 2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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