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의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등의 범죄에 ‘리니언시(자진신고감면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공정거래 분야의 카르텔(담합) 범죄 적발에 힘을 발휘해온 리니언시를 자본시장 범죄에도 도입하려는 것이다. 입법화되면 조직적으로 은밀하게 이뤄진 자본시장 범죄를 조기에 적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윤창현 '자본시장 리니언시' 법안 발의 |
개정안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운영하는 리니언시 제도를 본뜬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위는 카르텔 범죄를 자진 신고한 기업에 대해 1순위자는 과징금 전액, 2순위자는 과징금 50%를 면제한다. 자진 신고자들에게는 검찰 고발 시에도 제외하는 면책 혜택을 주고 있다. 법안은 리니언시에 더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공범의 죄를 진술한 자에게도 형 감경·면제를 적용하도록 했다.
윤 의원은 “시세조종·부정 거래 행위는 다수의 사람이 관련돼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며 “적시성 있는 수사 진행과 유사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진술, 증거 확보에 공범이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진신고 도입은 세계적 추세" |
“범죄 조직 내부자가 자진 신고하면 형을 감경·면제해주는 것은 세계적 추세입니다. 조직적인 범죄의 경우 은밀하게 이뤄져 적발이 어렵고 폐해는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정거래 카르텔 사건에서 리니언시 효과가 검증됐기 때문에 앞으로 자본시장 등 다른 영역으로 확대될 것입니다.”
자본시장 범죄에 대해 자진신고감면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평가를 내놓았다. 범죄자들이 수사기관에 대응해 점점 더 지능적이고 은밀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서는 내부자의 폭로와 협조를 이끌어낼 제도를 갖추는 게 필수적이라는 취지다.
자본시장법, 자진신고 규정 공백 |
이러한 문제의식은 윤 의원이 자본시장 분야의 3대 범죄인 부정 거래, 시세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범죄를 겨냥해 일명 ‘자본시장 리니언시’ 법안을 발의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해당 범죄를 신고하거나 제보한 경우 포상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지만 위법 행위를 자진 신고하거나 내부 증언으로 범죄 해결에 협조한 사람과 관련해서는 아무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윤 의원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자수해 범죄 규명이나 범인 체포에 기여한 경우 형을 감경·면제해주도록 했다. 이에 법안이 통과되면 자본시장 범죄자 간에 불신을 형성하고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카르텔선 리니언시 활발…검찰도 박차 |
이에 이달 10일부터 검찰도 ‘카르텔 사건 형벌 감면 및 수사 절차에 관한 지침’을 외부에 공개하고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카르텔 범죄 자진 신고자에 대해 강제수사를 하지 않고 형벌도 감경·면제해주는 내용이 골자다. [관련기사▶검찰 “담합 자수하면 압수·구속 피하고 형벌도 감면”]
자본시장 범죄 연 수십건…피해 계속 |
자본시장 분야에도 자진신고감면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불공정 거래 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3대 불공정 거래인 부정 거래, 시세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사건은 2016~2019년 4년간 총 242건이 발생했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특히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는 정보를 가진 공모자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리니언시 도입 검토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윤 의원의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본시장 범죄 적발 건수도 현재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법안은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공범의 죄를 진술한 사람에게도 형 감경·면제를 해주도록 하고 있어 카르텔 리니언시보다 대상과 범위를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부 절차·기준 정해 투명성 높여야" |
검찰이 최근 공표한 카르텔 자진 신고 접수·처리 지침에서 절차와 기준을 명시함으로써 검사의 재량을 제한한 것도 이러한 점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카르텔 리니언시도 2005년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제도가 활성화된 바 있다.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대표변호사는 “자본시장 범죄는 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제보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세조종이 일어나기 전이나 일어나는 와중에 자수하면 좀 더 감경을 해준다는 식의 기준을 예규에 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법이 시행된다면 조사·검사 기관인 금융 당국과 기소권이 있는 검찰 간 원활한 협의 채널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 당국에 들어온 자진 신고에 대해 검찰이 감경·면제 해당 여부를 신속하게 판단해줘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취지다.
내부 신고자에 대해 비밀 유지 등 보호 장치가 갖춰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부 신고자에 대한 비밀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으면 사적 보복 등의 위험으로 제도 도입의 효과가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권형·박경훈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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