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를 가진 남성이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어머니의 죽음을 반 년 만에 세상에 알린 ‘방배동 모자(母子) 사건’은 한국 사회의 안전망에 아직도 빈틈이 많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런데 송파구 세 모녀 사건 등 이전의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방배동 모자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주요 원인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늦어지고 있는 사이 유사한 비극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5일 방배동 모자가 거주하던 지역의 주민센터에 따르면 지난 5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 모(60)씨는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기 두 달 전인 지난 2018년 8월 주거급여를 사전 신청했다. 이후 김씨는 그 해 10월부터 매달 24~28만원의 주거급여를 받았다.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폐지에 맞춰 급여를 신청한 것을 감안하면 김씨에게는 기초생활을 보장받으려는 ‘복지 수요’가 있었던 셈이다.
이에 주민센터 측은 김씨에게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수급을 권했지만 김씨는 “전 남편에게 연락이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돼 지방자치단체가 김씨의 딸(김씨의 부양의무자)과 전 남편(아들 최씨의 부양의무자)에게 부양 의사와 가족관계 단절 여부 등을 물어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남편과 불화를 겪다 1990년대 초반에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김씨가 생계·의료급여 신청 자체를 하지 않았기에 ‘지방생활보장위원회(보장위)’도 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보장위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심의를 거쳐 수급 자격을 주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 2018년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부양의무자 기준의 한계를 보완할 대안으로 보장위 활성화 조치를 제시했다.
하지만 김씨의 사례가 보여주듯 일반적으로 보장위를 개최하려면 수급권자가 급여를 신청하고 지방자치단체가 부양의무자에게 연락하는 과정을 그대로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빈곤사회연대와 한국도시연구소는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보장위의 심의는 수급권자의 상황과 위치를 가족에게 노출시키고 가족관계 해체 사유서를 작성하게 만든다”며 “보장위는 부양의무자 기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기준으로 인한 문제점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8월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2년까지 폐지하고 의료급여 기준은 완화하는 내용의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네 달 만에 빈곤가구의 비극이 또 다시 발생해 정부의 공약 이행이 더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기초생활보장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은 지난 14일 성명에서 “방배동 모자 비극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반복된 문제”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보장의무자 기준 폐지 공약은 임기 4년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이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부양의무자 기준과 별개로 지역사회의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할 주민센터가 김씨를 마지막으로 상담한 것은 김씨가 지난 3월 코로나19 방역물품을 받기 위해 주민센터를 방문했을 때였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상담 시 이상징후가 발견되면 조치를 취하지만 김씨의 경우에는 그런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전기요금·가스요금이 수개월간 미납됐지만 김씨 같은 기초생활수급자는 보건복지부의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에서 제외돼 서초구는 김씨 가구의 미납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더 관심을 가졌다면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소임을 다하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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