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4년 12월 16일 노르트홀란트 운하가 뚫렸다. 총연장 75㎞ 개통에 5년이 걸렸다. 산이 거의 없고 범람 방지용 제방을 쌓는 방식이었기에 공사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랐다. 구간의 특징은 노르트홀란트주 관통. 북해의 군항 덴헬더르에서 알크마르·퓌르메런트 등 내륙 도시를 거쳐 암스테르담까지 닿았다. 지도를 보면 이 운하의 공사 목적이 의아해진다. 덴헬더르에서 암스테르담까지 바다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상황에 대입한다면 부산에서 인천까지 운하를 판 격이다. 네덜란드 국왕 빌럼 1세가 주도한 운하 건설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 첫째,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기를 거치며 활력이 떨어진 상공업의 활성화와 물류 증진을 꾀했다. 둘째, ‘안전한 무역항’을 찾았다. 다른 나라와 달리 네덜란드는 해수면이나 강보다 낮은 지형이 많아 해안에 인접한 항구를 꺼렸다. 험난하기로 유명한 북해의 파도가 늘 두려웠다.
세 번째 목적은 기존의 내륙 교통수단과 네트워크 형성. 도로가 발달하지 않고 철도 역시 등장하기 이전 유럽 중서부의 대량 운송 수단은 운하였다. 특히 ‘저지대 지역’인 네덜란드는 마을과 도시마다 수많은 중소형 운하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1876년에는 더욱 효율적인 운하가 새로 생겼다. 길이 25㎞에 불과하지만 암스테르담에서 북해로 바로 나갈 수 있는 북해 운하가 11년 공사 끝에 개통된 것이다. 철도 건설이 붐을 이루는 시대에도 북해 운하는 지선 운하 10개가 바로 생길 만큼 물동량이 많았다.
암스테르담뿐 아니다. 네덜란드 전체의 물류 경쟁력은 요즘도 여전하다. 로테르담이 오늘날 유럽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는 것도 수없이 많은 도로와 철도, 수운(운하)으로 연결된 덕분이다. 네덜란드 도시 이름에는 물과 역경 극복과 생존, 번영의 역사가 담겨 있다.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담 등 ‘담(dam)’이 들어가는 도시는 강물이나 해수의 유입을 막기 위한 댐 혹은 방조제 건설로 시작된 역사를 공유한다.
국토의 절반이 해수면보다 낮다는 역경을 물류 최적화에 역으로 활용한 네덜란드 사례와 반대인 나라도 있다.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을 뚫어 운하로 연결하겠다며 수십조 원의 돈을 썼으니까. 운하와 방조제의 나라 네덜란드도 최근에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거대한 방조제가 새로운 신도심과 택지·국제공항을 제공한 반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환경오염이라는 부작용까지 수반했다는 것이다. 신기술 개발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을 뿐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소식이 들린다.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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