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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의 철학경영] 이겨 놓고 싸워라

전 연세대 교수

<138> 성공의 필요조건

싸움 시작한 뒤 이기려 하는 건 하수

질 것 같으면 아예 싸울 생각 말아야

준비하면 불황 때도 돈 버는 사람 있어

발상 전환하고 조바심 버리며 살기를

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




퇴임한 지 벌써 2년이 지나간다. 퇴임 후 생활을 묻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유롭지만 한가하지는 않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 가서 해야 일이 정해진 것은 없다. 연구소라도 만들어 활동하라고 권하는 사람에게 28년 가까이 한 장소에 출퇴근했는데 또 사무실 차리고 싶지 않다고 답한다. 사무실 낼 생각도 없다. 번듯한 직함도 없다. 그래야 진정한 프리랜서가 되는 것 아닐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닥치자 진짜 일감이 줄어든다. 그래서 근황을 묻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코로나19 조심합시다. 그러나 졸지는 맙시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보기에 좋다. 누구 말처럼 “돈 없는 것만 해도 서러운데 ‘가오’까지 없어서야 되겠나.” “이겨 놓고 싸워라(先勝求戰).”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싸움을 시작한 뒤에 이기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주변에 보면 퇴임 후 식당을 차리는 사람들이 많다. 치킨집·피자집을 시작해서 망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또 여기저기 새로 식당이 문을 연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는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그 사람도 별 대책 없이 예상보다 일찍 퇴임하게 됐단다. 갑자기 길바닥에 나앉은 기분이었다. 집사람한테 눈치 보여 일단 아침만 먹고는 무조건 밖으로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한 설렁탕집에 갔는데 너무 맛있는 것이다. 사람도 제법 북적이는 곳이어서 우연히 들어갔다가 입에 쏙 맞는 집을 발견한 것이다. 일주일 연속 그 집에 가 먹고 또 먹어도 기가 막히게 맛있다. 주인한테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당연히 거절당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 집에서 일 년 동안 월급 한 푼 안 받고 일하겠다. 뭐든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 그래서 1년 만에 모든 비법을 전수받고 나서 자기 식당을 열었다. 결과는 대박이다. 죽어라 준비하라.

주식 시장이 활황이면 주거용 인테리어가 성행한다. 주식에 투자해서 번 돈을 집 꾸미는 데 쓰는 것이다. 그러다 불황이 닥치면 이번에는 상업용 인테리어 시장이 잘된다. 망해 나가면 새 주인이 인테리어를 싹 다 바꿔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또 망하면 또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한다. 불황 때도 돈 버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식당을 가장 저비용으로 오픈하는 방법을 한 전문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우선 망해 비어 있는 식당을 찾아라.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우선 권리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인테리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막걸리 주막집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부동산 중개소에 가서 인근에 망한 식당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망한 막걸리 주점은 없다. 대신 망한 와인바는 있다. 거기라도 관심이 있느냐”라는 답이 돌아온다. 같이 가보니 그런대로 괜찮다. 인테리어는 물론 식기까지 그대로 쓰기로 했다. 피자를 올려놓던 접시에 빈대떡과 파전이 올라간다. 그리고 와인 잔에 막걸리를 마시는 손님들이 색다르다고 좋아한다. 그 퓨전 음식점은 대박 난다. 발상을 전환하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과 베트남 사이에 협상이 벌어졌다. 결과부터 말하면 미국이 진다. 전문가들의 후일담을 들어보면 협상에 임하는 자세에서 벌써 미국은 지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우선 미국 대표는 시내 고급 호텔에 투숙한다. 그리고 계약 기간을 1주일 단위로 연장하기로 한다. 반면 베트남 대표는 파리 외곽에 있는 주택을 3년 기한으로 임대한다. 협상에서 시간을 급하게 잡는 쪽이 이기겠는가 아니면 느긋한 쪽이 이기겠는가. 이것만 봐도 양측의 협상에 임하는 자세에 엄청난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가. 협상 결과는 역사에 기록된 그대로다. 베트남의 공산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베트남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것이 선승구전이다.

이기고 싸워라. 질 것 같으면 아예 싸울 생각도 하지 마라. ‘져 놓고 이겼다’고 우기는 정신 승리는 도움이 안 된다. 죽어라 준비하고, 발상을 전환하고, 조바심을 버리며 살아가라. 이것이 바로 선승구전 하는 방법이다. 인생도 비즈니스도 다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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