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해군력이 섬나라 못지않게 중요하다. 해군력의 상징이라고 하면 단연 ‘항공모함’과 ‘핵 추진 잠수함’을 꼽는다. ‘강한 해군’을 추구하는 우리 해군 역시 항공모함과 핵 추진 잠수함 보유를 기대했다. 최근 정부는 경항공모함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해군의 두 가지 숙원 사업 중 하나인 항공모함은 경항공모함 도입으로 해결된 가운데 핵 잠수함 도입 역시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핵 추진 잠수함은 ‘핵 잠수함’이라고 불린다. 핵 잠수함이라고 핵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이 아니다. 핵이 동력원인 잠수함이 핵 잠수함으로 불리며 정확한 명칭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다.
핵 잠수함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보유를 희망하는 무기다. ‘재래식 잠수함’ 또는 ‘디젤 잠수함’이라고 불리는 일반 잠수함과는 차원이 다른 작전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해상전에서 항공모함과 더불어 전쟁의 판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핵이 동력원인 핵 잠수함과 축전지가 동력원인 디젤 잠수함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디젤 잠수함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핵 잠수함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속력과 수중 작전 지속 능력, 공격 능력 등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속력 면에서 큰 차이를 볼 수 있다. 해군의 여덟 번째 잠수함인 나대용함 함장을 지낸 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잠수함을 기차에 비유하면 핵 잠수함은 고속 열차인 ‘KTX’, 디젤 잠수함은 완행열차인 ‘무궁화호’라고 할 수 있다”며 “핵 잠수함은 평균 속력이 시속 37~47㎞로 지구 한 바퀴(4만 120㎞)를 도는데 40일 정도 걸리는 반면 디젤 잠수함은 평균 시속 11~15㎞로 지구 한 바퀴를 도는데 140일가량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핵 추진 잠수함은 동력으로 핵(원자력)을 사용하는 만큼 운항 중 연료를 재보급받을 필요가 없어 기항지(선박·함정이 항해하면서 머무르는 항구)도 필요 없다. 하지만 디젤 잠수함은 운항 중 연료를 보급받아야 해 기항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같은 기동성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지난 1982년에 격돌한 포클랜드전쟁이 꼽힌다. 당시 영국은 1만 4,400㎞ 떨어져 있는 포클랜드로 핵 잠수함과 디젤 잠수함을 동시에 보냈다. 핵 잠수함은 10일 만에 현장에 도착해 아르헨티나의 함정을 격침하고 제해권(적 해군으로부터 간섭을 배제할 수 있는 해양 우세의 정도)을 장악해 해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 됐다. 하지만 디젤 잠수함은 전투가 끝난 후인 35일 만에 현장에 도착해 해전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이 해전에서 디젤 잠수함의 무력함이 입증되자 당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디젤 잠수함의 조기 퇴역을 결정했다. 현재 영국은 미국처럼 핵 잠수함만 운용한다.
핵 잠수함은 수중 작전 지속 능력에서 위력을 제대로 발휘한다. 디젤 잠수함의 경우 잠수 지속 기간은 최대 3주가량이다. 반면 핵 잠수함은 연료가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공급됨에 따라 이론상으로는 잠수 지속 기간 역시 무제한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잠수 기간이 무제한이라는 것은 충분한 식량과 승조원의 체력 등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식량 보급과 승조원 휴식 등을 고려하면 핵 잠수함의 실제 잠수 능력은 최대 6개월가량으로 디젤 잠수함과의 잠수 능력 차이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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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잠수함은 침투해 고속으로 기동하면서 은밀하게 적 잠수함을 추적·감시할 수 있다. 적 함정을 공격한 후 고속으로 현장을 이탈할 수 있다. 반면 디젤 잠수함은 고속 기동이 불가능해 위치가 수시로 노출돼 은밀하고 빠른 작전이 어려운 점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잠수함의 주요 임무가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적 해역을 수시로 넘나드는 은밀함인 점을 감안할 때 고속 기동성은 핵 잠수함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공격 능력에서도 핵 잠수함과 디젤 잠수함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핵 잠수함은 디젤 잠수함에 비해 월등한 추진력을 보유하고 있어 선체의 크기를 키울 수 있다. 선체가 커짐에 따라 어뢰·기뢰·미사일 등 다양하고 화력이 강력한 무기 탑재가 가능하다. 디젤 잠수함은 추진력이 약해 선체 크기도 한계가 있고 적재할 수 있는 무기 역시 제한적이다. 현재 디젤 잠수함만 18척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 해군에 핵 잠수함이 도입되면 활약상은 기대 이상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국내의 핵 잠수함 도입 계획은 노무현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당시 조영길 국방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핵 잠수함 건조 계획을 보고했다. 조 장관의 보고 내용은 프랑스 핵 잠수함 바라쿠다를 모델로 한 한국형 핵 잠수함 3척을 2020년까지 실전 배치하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 같은 보고를 받은 후 계획을 승인했다. 노 대통령이 핵 잠수함 도입 계획을 승인한 시기가 2003년 6월 2일이어서 이 계획은 ‘362 사업’으로 불렸다. 이 사업은 순항하는 듯했지만 1년 만에 중단됐다. 당시 362 사업단장이었던 문 교수는 “362 사업 때 해군은 핵 잠수함보다는 이지스함 확보에 우선순위를 뒀는데 한정된 예산 내에서 핵 잠수함과 이지스함 도입을 함께 진행하기 어려웠다”며 “또 당시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우라늄 농축 비밀 실험을 했는데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져 2004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단이 한국에 오면서 핵 잠수함 사업 추진이 힘들게 됐다”고 사업 중단 배경을 설명했다.
핵 잠수함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가 핵 잠수함 도입에 관한 뚜렷한 계획을 내놓지는 않은 상황이다. 현재 핵 잠수함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과 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 국이고 브라질은 프랑스와의 협력을 통해 오는 2029년까지 핵 잠수함을 실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가 지금부터 핵 잠수함 도입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면 브라질 다음으로 핵 잠수함 보유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이 핵 잠수함 보유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한국·미국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인 ‘한미 원자력협정’이라는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한미 원자력협정이 장애물은 아니다. 이정익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2017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르면 한국은 20%까지 핵 연료의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런 수치는 저농축에 해당한다”며 “핵 잠수함은 저농축우라늄으로도 건조할 수 있다. 핵 잠수함 개발은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함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도 한층 진보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핵 잠수함 보유국이 되기 위해 이제 남은 것은 ‘정부의 의지’라고 입을 모은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 등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핵 잠수함의 도입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북한 잠수함을 기지에서부터 효과적으로 봉쇄하고 또 추적·격침하기 위해서는 장기간 은밀한 작전이 가능한 핵 잠수함이 필요한 것이다.
해군 최초의 잠수함인 장보고함 함장을 지낸 안병구 예비역 준장은 “우리는 우라늄을 저농축할 수 있는 기술 등을 비롯한 핵 잠수함 건조 능력이 있다”며 “핵 잠수함 도입은 이번 정부의 공약이기도 한 만큼 정부가 의지를 바탕으로 핵 잠수함 건조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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