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曹操)가 위나라를 통치했던 시절 여성 지식인 채염(蔡琰·177년~?)은 문학과 음악에 두루 정통했다. 특히 말솜씨가 매우 유려했다. 남편이 횡령죄로 사형을 당하기 직전 비통한 어조와 명쾌한 논리로 조조에게 호소를 거듭한 끝에 마음을 움직여 형 집행을 중지시켰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후한 말의 대학자 채옹의 딸인 채염은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달랐다. 여섯 살 때 아버지가 거문고를 연주하다 줄이 툭 끊어지자 곧바로 “두 번째 줄이 끊어졌다”고 딱 맞혔다고 한다.
그러나 가정사는 박복(薄福)한 편이었다. 16세에 첫 결혼을 하고 남편이 이내 요절한 뒤 집에 돌아와 지내던 중에 아버지 채옹이 정쟁에 휩쓸려 죽임을 당했다. 이후 채염은 195년 낙양에 침략한 흉노족 병사에 의해 납치돼 남흉노 왕족 유표에게 첩으로 바쳐져 그곳에서 12년 동안 살면서 자식을 둘 낳았다. 고국으로의 귀환은 조조에 의해 이뤄진다. 채옹과의 관계가 각별했던 조조가 채염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흉노에 큰돈을 주고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12년 만의 귀향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었다. 흉노 왕족인 두 자식을 두고 와야 했기 때문이다. 채염은 그 찢어지는 심정을 ‘떠나고 남는 두 가지 정을 다 펼치기 어렵구나(去住兩情兮難具陳)’라는 노랫말로 표현했다. 가는 것도 머무는 것도 둘 다 어렵다는 뜻의 ‘거주양난(去住兩難)’이라는 사자성어가 태어난 사연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상시 근로자 5인 미만의 소상공인들이 오는 2021년 경영 환경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거주양난’을 가장 많이 꼽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다.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는 소상공인들의 오도 가도 못할 기막힌 처지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실효성 있는 지원 대책을 만들어 거주양난의 수렁에 빠진 서민들을 도와줘야 할 텐데 그 책무를 맡은 정부와 여당이 영 미덥지 못하다. 집값을 잡겠다면서 더 오르게 하고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면서 법치를 흔드는 난맥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은 코로나19 사태로 거주양난에, 온 나라는 국정 혼란으로 진퇴양난에 처한 우울한 세밑이다.
/문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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