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20일로 예정된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은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 회복, 동맹 및 파트너국과의 관계 중시, 사안별 다자주의적 협력을 내세운 전통적인 미국 외교의 복원을 의미한다. 일견 ‘도널드 트럼프의 모든 것 뒤집기(Anything But Trump)’로 보이지만 최소한 한 가지 정책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바로 미중 전략 경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대중 외교 속에서 미중 모두와 큰 마찰 없이 생존한 문재인 정부에는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식 미국 단독 플레이 대중 외교를 답습하지 않을 것이다. 조 바이든 당선인은 ‘중국의 폭력적인 행동과 인권 침해에 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미국의 동맹, 파트너국들과 연합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라면서 취임 첫해에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개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권위주의 독재국가 중국의 위협에 맞서는 광범위한 대중 연합 전선의 출범식이 될 것이다. 한국은 트럼프 시절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참여 요청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했고 화웨이 5G 장비 사용을 금하는 클린 네트워크 참여에도 주저했으며 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쿼드(Quad)를 확대한 쿼드 플러스 구상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중국 눈치 안 보고 회의에 갈 자신이 있을까.
지난달 바이든 당선인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있어 핵심축(linchpin)’이라고 언급했다. 돈을 먼저 따지는 트럼프와 달리 동맹을 존중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은 분명 한미 동맹을 회복할 좋은 기회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동맹의 역할과 의무에 대한 높은 수준의 기대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 정부가 애타게 원하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조치인 한한령(限韓令) 철회에 대해서는 한마디 없이 ‘한국은 독립된 자주 국가’라면서 우리의 반중 전선 참여를 경계하고 나섰다.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한중 2+2 외교안보 대화 가동까지 제안하면서 노골적인 추파를 던졌다.
흔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을 ‘안미경중(安美經中)’으로 표현한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고 가능한 한 미중 모두와 원만하게 잘 지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쉽지 않은 얘기이다. 동맹국 미국이 대놓고 한편이 돼달라고 나오면 더욱 힘들어질 것이 뻔하다. 아무도 자신 있게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난제이지만 다가올 일을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더 이상의 줄타기 외교는 끝내야 하는 이유다.
우선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가치와 원칙에 대한 공론화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얼핏 생각해도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투명성과 개방성, 인권과 생명 중시 등이 떠오른다. 한국의 외교는 이러한 가치와 원칙을 수호하고 신장시키는 편에 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간혹 국민 경제와 생활에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이겨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국가들의 처신을 살피고 필요한 협력을 해야 한다. 최근 호주가 보리에서 와인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보복을 당하면서도 의연히 맞서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정부와 국민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 외교부도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외교부가 존재감이 없고,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고, 장관의 뚜렷한 외교정책 연설 하나 기억나지 않는 위상으로는 험난한 미중 경쟁의 틈바구니를 뚫고 나갈 수 없다. 미 국무부도 트럼프 시절에 위축된 위상을 되찾는 노력을 시작한다고 한다. 한국 외교부가 그들이 신뢰하고 인정하는 실력 있는 카운터파트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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