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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금융허브, 20년 뒤에도 어렵다

김영필 뉴욕특파원

이낙연, 자영업자 임대료 거론하며

"대출 이자부담 낮춰달라" 은행 압박

세제·규제 등 이점 있어야 하는데

시장 원리 깨진 곳에 누가 오겠나





작고한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지난 2003년 “합병 이후 국민은행이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은행 순위 60위, 자산 규모로는 66위로 부상했다”며 “2005년까지 세계 31~33위 은행이 될 것”이라고 했다. 17년이 지났지만 그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국민은행을 포함한 주요 국내 은행은 여전히 60~70위권을 오르내린다.

오래전 얘기가 생각난 것은 닷새 전에 있었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 때문이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의 임대료 문제를 거론하면서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 금리 차이) 완화에 마음을 써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부탁’이라며 임대인이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가져다 쓴 돈, 임차인들이 가게를 빌릴 때 받은 대출의 이자 부담을 낮춰달라고 콕 집어 얘기했다.

정치권의 은행 압박이 새롭지는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 가까이는 박근혜 정부 때도 그랬다. 수수료와 금리 인하는 단골 메뉴다. 고졸 채용과 대졸 초임 임금 삭감, 창조 금융과 서민 대출 지원에 은행을 동원했다. 은행은 국정 철학과 정부 정책을 민간으로 확산하는 통로이자 수단이었다.

상황은 더 나빠지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시작부터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명칭에서 금융을 뗐다. ‘금융 민주화’에 은행은 10년 전 법적 분쟁이 끝난 외환 파생 상품 ‘키코(KIKO)’ 피해 기업에 보상금을 지급하게 됐다. 여당 대표는 금리 인하가 필요한 대상과 방식을 세세히 언급하고 전직 은행연합회장은 지난달 신임 회장 추대 사실을 전하면서 모피아(재무부+마피아) 중에서도 성골인 관료를 “업계 출신”이라고 했다. 관료의 업계 진출을 반대하지 않지만 적어도 과거에는 이런 억지는 없었다.

사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는 나랏돈으로 지원하는 게 맞다. 자영업자들의 매출 급감은 사회적 거리 두기 탓이다. 정부 지시를 따른 결과다.

급격한 자영업의 몰락은 실업 확대와 경기 둔화도 불러온다. 이는 또 다른 파산과 정리 해고로 이어진다. 은행에도 직격탄이다. 미국도 월세를 못 내는 이들을 위해 납부 유예와 퇴거 금지 조치를 취한 바 있다.



하지만 가격에 개입해 시장을 흔들면 곤란하다. 금융 비용을 줄여주고 싶다면 예산으로 이자를 낮춰주거나 보증을 서는 게 정석이다. 언제까지 은행의 공공성 뒤에 숨을 것인가. 미국도 위기 때는 금융사를 압박하지만 공개적인 금리 인하 지시는 최소한 이번 위기 때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민주당이 제기한 동북아 금융 허브론은 당황스럽다. 뉴욕에서 본 금융 허브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거대한 벽이다. 대형 은행뿐 아니라 투자은행(IB)과 신용평가사, 회계법인,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월스트리트저널(WSJ)이나 블룸버그 같은 언론까지 전체적인 생태계가 갖춰져야 한다.

특히 시장은 철저히 돈의 논리가 지배한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잠재적 적국인 중국을 옹호하는 게 월가다. 미국의 제재에도 홍콩에서 엑소더스가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참여정부 때 나온 동북아 금융 허브론은 2020년 대한민국을 도쿄와 홍콩에 버금가는 아시아 3대 금융 허브로 만드는 게 목표였다. 올해도 열흘밖에 남지 않은 지금, 참여정부의 구상은 김정태 전 행장의 꿈처럼 물거품이 됐다.

후발 주자는 세제와 규제에서 도드라지는 이점이 있어야 한다. 시장 원리가 깨지는 곳에 금융 허브는 없다. 누가 오겠는가. 현실과의 간극을 메우지 않는 한 민주당이 다시 꺼낸 금융 허브론은 국회의 세종 이전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지금 같은 투박한 관치로는 20년 뒤에도 달라질 게 없다.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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