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취임 전 택시 기사를 폭행하고 처벌받지 않은 사건을 둘러싸고 사건의 결정적 증거가 될 블랙박스 영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은 경찰의 봐주기 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직권남용이라고 비판했고 경찰은 해당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법리 적용을 했는지 관련 판례들을 다시 분석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초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되면 이 같은 경찰의 부실 수사 논란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이 차관은 변호사로 재직하던 지난달 6일 밤 서울 서초구 자택 앞에서 택시 기사가 술에 취한 자신을 깨우자 기사의 멱살을 잡고 실랑이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의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이 차관을 현행범 체포하지 않고 파출소로 임의동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 출동한 지역 경찰이 현행범 체포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택시 블랙박스에 당시 영상이 녹화돼 있지 않아 증거 관계가 불분명했고 이 차관이 인적 사항을 제출하고 수사에 협조할 의향을 밝혀 자진 귀가 후 출석시켜도 될 것으로 보고 발생 기록만 경찰서로 넘겼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차관에게 경찰 출석 요구를 했으나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후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해 더 수사할 실익이 없어 내사 종결로 처리한 것”이라며 “수사 실무상 그렇게 내사 종결한 사례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올 4월까지 법무부 법무실장을 지냈던 이 차관의 신원을 파악하고 봐주기 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상위 기관에 별도로 보고된 바가 없다며 관련 의혹을 일축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발생 직후 서울지방경찰청에 전혀 보고되지 않았다”며 “통상 중요한 사람에 대한 사건의 경우 발생 보고부터 받지만 이번 건은 일절 보고된 바 없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택시 기사를 폭행했는데도 형사 입건 없이 마무리한 처분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사건 발생 이후 택시 기사는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고 서초경찰서는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 폭행을 무겁게 처벌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아니라 반의사불벌죄인 형법상 폭행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비슷한 상황에서) 이번 경우처럼 택시가 운행 중이 아니라고 보고 단순 폭행죄를 적용한 판례도 있고 다시 운행이 예상되는 만큼 위험하다고 보고 특가법을 적용한 판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폭행 사건 당시의 구체적 정황을 확인해볼 수 있는 택시 블랙박스 영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경찰에 따르면 최초 현장 출동한 경찰관이 택시 안 블랙박스를 확인했을 당시는 물론 추후 택시 기사가 제출한 블랙박스 메모리카드에도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은 녹화돼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택시 기사들이 통상 취객과의 실랑이에 대비해 블랙박스를 항상 켜두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경찰은 논란이 계속되자 “서울경찰청 내 법조계 출신과 현직 변호사, 이 사건을 실무상으로 취급한 간부들을 중심으로 관련 판례를 정밀하게 다시 한 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사건 처리에 대한 본격적인 진상 조사나 재수사로 이어지지 않는 한 관련 의혹을 해소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차관은 이날 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에서 “개인적인 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하다”며 “경찰에서 검토해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으로 생각한다. 공직자로서 더욱 신중하게 처신하겠다”고 밝혔다. /한민구·조권형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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