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체류 중인 사실혼 관계 외국인에게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된 여성가족부 권고에 대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불가 방침을 통보했다. 이 제안이 정부의 외국인 건강보험 정책 기조에 맞지 않는 데다 도덕적 해이 등 부작용도 상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1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복지부는 최근 사실혼 관계의 외국인에게 법적 혼인 관계와 동등한 건강보험 혜택을 주자고 제안한 여가부에 불수용 입장을 전달했다.
지난달 여가부는 현행 외국인 건강보험 제도가 법적 배우자와 미성년(19세 미만) 자녀만 세대원으로 인정해 사실혼 외국인은 따로 지역가입을 해야한다며 복지부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양성평등 관점에서 정책·법령을 분석해 소관 부처에 개선을 권고하는 특정성별영향평가에 따른 조치로 권고받은 기관은 30일 이내에 개선 계획을 여가부 장관에게 제출한다. 다만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
관계 부처가 여가부 권고를 불수용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여가부가 해마다 약 10가지 과제 개선을 권고하면 80% 정도는 부분적으로라도 수용되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건강보험 제도가 남성 대비 취업자가 적은 외국인 여성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양성평등 관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일각에서는 여가부 권고에 따를 경우 사실혼 관계 증명이 어렵고 외국인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나왔다.
복지부는 여가부 권고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외국인은 주민등록이 된 우리나라 국민과 달리 가족 관계 증명이나 소재 파악이 어려워 광범위한 세대원 인정이 방만한 이용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있었다”며 “이를 막기 위해 외국인 지역가입 인정 세대원을 법률혼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로 제한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혼 배우자는 혼인 관계 증명이 어려운데 세대원으로 인정할 경우 부작용이 굉장할 것”이라며 “사실혼 외국인 수가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늘어날지 파악하기 힘들어 소요 예산을 추정하기조차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여가부 관계자는 “복지부 입장과 달리 여가부 연구진 견해 중에 타당한 내용이 있다고 판단해 부처 간 사전 의견조회 절차를 거쳐 최종 권고를 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건강보험 지역가입 제도에서는 세대주가 가입하면 주민등록상 동일 주소지에 거주 중인 가족이 자동으로 세대원으로 인정돼 보험 혜택을 받는다. 이러한 구조는 소재 파악이 힘든 외국인에게 제대로 된 확인절차 없이 광범위하게 혜택을 주고 불법 체류자 등이 이를 악용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해부터 외국인 지역가입 세대원을 법률혼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로 제한하고, 필요할 때만 보험에 가입하는 역선택을 막기 위해 6개월 이상 체류 외국인은 자동 가입이 되도록 의무화했다. 복지부는 당시 이 같은 개정 취지에 대해 “도덕적 해이를 막고 내·외국인 간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난민·인도적 체류자 가족의 지역 건강보험 인정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그는 난민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외국인의 세대원 구성 자격 및 보험료 산정 방식이 특별한 보호가 요청되는 난민 인정자와 인도적 체류허가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며 이들의 세대원 인정 범위 확대와 보험료 현실화를 촉구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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