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같은 생활 폐기물도 제대로 버리면 상품이 됩니다. 그냥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재활용품을 잘 선별해 수거 후 산업용 재료로 가공·판매하는 순환 경제 모델이 실제 가능함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폐기물 재활용 스타트업 수퍼빈의 김정빈(47·사진) 대표는 최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기반의 폐기물 수거 장치를 전국에 더 많이 설치하고 재활용 소재를 가공하는 공장도 내년 상반기에 세울 계획”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수퍼빈은 자체 개발한 AI 수거 장치 ‘네프론’을 지난 2017년부터 전국에 설치하고 있다. 자판기 겉모습과 흡사한 네프론은 페트병·캔을 투입구에 넣으면 머신비전(AI 기반 시각 검사)이 상태를 파악·선별해 받고 이용자에게 현금화할 수 있는 포인트 적립으로 보상해준다. 오염되거나 조건에 맞지 않는 페트병을 넣으면 ‘수거 거부’ 안내를 한다.
김 대표는 “머신비전이 페트병을 사갈 석유화학 회사, 수거 업체 등 매입자의 요구에 맞춘 판독 데이터 기준으로 판별한다”며 “머신러닝으로 선별한 폐기물은 100% 재활용된다”고 말했다.
현재 네프론은 서울·과천·광주·구미 등 전국 24개 지방자치단체에 160여 개가 설치됐다. 매월 네프론 1대가 1톤 정도를 수거한다. 보상으로 나가는 포인트도 월 1,000만 원에 달한다.
김 대표는 “처음 이용한 사람들은 ‘버리는 페트병·캔이 돈이 되는구나’라는 반응을 보인다”며 “폐기물을 상품·자원화하는 체계가 자리 잡는다면 폐기물을 무작정 받아 결국에는 모두 소각·매립하는 현재의 수거 시스템에도 변화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거에 그치지 않고 재활용 소재를 직접 가공·생산하는 것이 김 대표의 다음 목표다. 보통 석유화학 회사들은 폐플라스틱을 잘게 쪼갠 ‘플레이크’를 소재로 쓰는데 국내에서는 A급 수준의 플레이크 물량을 대지 못해 일본에서 매년 1조 원어치의 플레이크를 수입해 쓰는 실정이다. 가공된 플레이크는 ㎏당 1,300원 정도로 폐페트병보다 수익성이 3~4배 높다. 수퍼빈은 플레이크 가공 공장을 이르면 내년 4월께 수도권 지역에 새로 건립할 계획이다.
그는 “연간 처리 용량이 1만 톤에 달하는 공장에서 재가공된 소재는 롯데케미칼 등 대형 석유화학 업체들에도 공급될 것”이라며 “공장 건립으로 재생 소재를 위한 수직 계열화가 완성되고 순환 경제의 틀도 만들어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오리건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케네디스쿨을 졸업한 김 대표는 국내 중견 철강 기업 코스틸을 5년간 이끌었던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자기 사업과 사회적 문제 해결에 대한 열망이 컸던 탓에 대표직을 그만두고 나와 2015년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당시에도 재활용 시장은 보조금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시장이었고 이를 해결해보자는 의지가 강했다”며 “미래에 생활 쓰레기의 위협을 막고 자연 생태계를 후대에 그대로 물려주는 데 한몫하는 기업으로 크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 전국에 네프론 1,000개 설치를 목표로 밝힌 그는 “공장 설립을 통해 재활용 폐기물의 매입부터 물류·저장·가공생산에 이르는 선순환이 가설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운용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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