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팎으로 우울한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중국은 플러스 성장을 기록할 것 같다. 현재까지 1·4분기 -6.8%, 2·4분기 3.2%, 3·4분기 4.9% 각각 성장했다. 추세를 연장해보면 성장률이 2.2~2.25% 정도다. 국내총생산(GDP)은 14조 6,000억 달러 정도로 예상된다. 주요20개국(G20)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이 예상된다. 중국의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이 관심을 끈다. 내년은 14차 5개년계획(2021~2025년) 첫해다.
우리는 일곱 차례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집행했다. 지난 1995년 1인당 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하면서 종료됐다. 경제 운영의 축이 민간으로 확실하게 이행됐기 때문이다. 중국은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를 넘었는데도 5개년계획을 지속하고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니까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큰 오해다. 우리와는 달리 담는 내용이 확연히 다르다. 중국은 큰 정책 흐름과 윤곽만을 선언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실행하면서 채워나간다. 정책 실험 국가다. 계속해서 질적 성장이 강조되고 있다. 과학기술 인재를 활용한 혁신, 친환경, 친서민의 윤곽은 그대로다.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를 GDP 대비 2.6%로 계획하고 있다. 4,000억 달러 정도다. 우리 경제 규모의 4분의 1 수준이다. 기술 입국이다. 적극적 대외 개방도 천명하고 있다. 6% 전후의 성장률로 복귀하는 것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전자화폐 운용이다. 중국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때 기축통화인 달러 안정성에 의문을 가졌다.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폐가 민간 영역에서 출현했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경제 규모가 커진 만큼 지키는 것도 과제다. 2009년부터 자국 화폐의 국제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모바일 결제인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2011년부터 급격하게 성장했다. 중앙은행이 2014년부터 전자화폐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비트코인, 모바일 결제 등이 자극이 됐다. 전자화폐는 1987년 미국의 제임스 토빈이 주장한 바 있다. 생소한 전자화폐에 대한 개념 정립과 실무진의 운용 실전이 중요했다. 여론 수렴도 거쳤다. 지난해 하반기, 상하이에서 인민은행 주도로 전자화폐 운용에 대한 전문가 회의가 있었다. 은행 관계자, 국제결제은행(BIS) 관계자, 국내외 학자들이 대거 참가했다.
전자화폐를 결정적으로 진전시킨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다. 돈이 전염의 매개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대면 결제가 훨씬 커졌다. 결제 시스템 독점이라는 인민은행의 기득권이 위협받게 됐다. 현재 구체적 운용 실험을 하고 있다. 선전, 쑤저우, 청두, 슝안 지역 등에서다. 대표적인 경제 핵심 지역들이다. 중국 내 보도로는 10~11월 선전과 쑤저우 주민 15만 명을 추첨해 1인당 200디지털위안(e위안), 총 3,000억 e위안(약 50조 원)을 지급했다.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화웨이·비보 등 스마트폰 회사는 물론 징둥 등 대표적 온라인 쇼핑몰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맥도날드 등 말단 소비 시장도 참여하고 있다. 미국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리브라’를 ‘디엠’으로 바꿔 내년 초 출시하는데 중국도 전자화폐 도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준비는 나름 충분하다.
전자화폐는 발행 원가 절감, 지하경제 해소, 마이너스 이자율 실행, 특정 계층에 대한 효율적 지원 등이 장점으로 거론된다. 중국 당국은 인터넷에 무지한 고령자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소외 지역 주민 서비스를 겨냥한 측면도 있다. 당장은 인민은행의 소액 결제 시장 지위 유지가 목적이다. 알리바바의 앤트그룹 상장이 무기한 연기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오는데, 차제에 전자화폐에 대한 국제 표준을 선점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중국은 북송 시대인 1023년 세계 최초의 지폐 교자(交子)를 유통한 자부심이 있다. 내년에는 전자화폐 운용의 세계적 각축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비대면 경제와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전자화폐 운용 시기가 크게 앞당겨졌다. 우리는 한국은행 등 당국이 올 하반기부터 전자화폐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에도 디지털 강국의 저력을 믿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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